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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Oct 02. 2021

1일1드로잉

teapot

#78일차

그릇장을 정리하다 오래전 넣어두고 잊어버린 찻주전자를 발견했다. 더운물에 흔들어 묵은 먼지를 쓸어 보내고 루이보스티를 우려내 마시면서 그렸다. 보이지 않지만 그림 안에는 따끈한 차가 담겨 있다. 짧고 뚱뚱한 teapot을 보고 있자니 우스꽝스러워 웃음이 난다. 불현듯 오늘 몇 번 웃었지? 세어보았다.


'생각하면 티끌 같은 월요일에서 생각할수록 티끌 같은 금요일까지' 나의 하루는 미미하고 보잘것없었다. 재미없는 목차로 정리되어 아무도 호기심을 갖지 않는 책처럼 일어나 출근하고 퇴근해 누웠다. 어제 적어둔 설렜던 다짐이 오늘은 불가능으로 읽힌다. 먼지 같은 일에 다치고 내가 내 혀를 깨물어 상처를 키웠다. 시인을 따라 '함부로 상처받지 않겠다, 크게 서운해하지 않겠다.' 결심해 본다. 지난 일 돌아보면 '너무 재미있는 것도 고단' 하고 서운함이 잦아도 고단하지 않았던가.


투병이 길어지면 곁에 있는 사람의 고단함도 깊어진다. 김경미의 <오늘의 결심>을 읽었다. 작은 찻집에서 찻상 가운데 두고 마음을 알아주는 지인을 만나는 착각이 들었다. 그가 나를 따뜻하게 달래주며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라일락보다 높은 곳에 살지 않고 별빛보다 많은 등을 켜지 않겠다 결심하면 할 수 있어. 한계를 알아도 담벼락 위를 걷는 갈색 고양이처럼 우리 끝까지 걸어보자."


우리 집 베란다에 서면 앞 건물과 옆 건물에 가로막혀 하늘이 조각나고 관악산 자락이 잘려있다. 오늘은 끊어진 하늘과 산의 연장선을 한없이 넓고 길게 그려보았다. 그리고 시인의 결심을 따라 다짐했다. '비관 없는 애정의 습관도' 길러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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