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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Oct 03. 2021

1일1드로잉

teapot2

#79일차

오랫동안 이상적인 집을 꿈꿔왔다. 설계도까지는 아니어도 그 집에 없어서 안 되는 것들을 생각으로 모아 왔다. 결혼해서 살 집을 정할 때 잠시 거쳐가는 집이라 여겨서 쉽게 결정했었다. 이 집에 십 년 넘게 살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 사이 집값은 하늘 높이 치솟았고 차곡차곡 모은 돈은 이대로 주저앉기엔 아쉽고 어디로 옮기기엔 터무니없는 액수가 되었다. 물건값에 대한 남편과 나의 견해는 평당 몇 천만 원이라는 집값을 타당하다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상적인 집으로 이주는 차일피일 멀어지고 있다.


지금 이상적인 집이 어렵다면 이상적인 방이라도 실현시켜볼 수 있을까 싶어 집의 사면을 둘러보았다. 이상적인 방이란 창 밖의 풍경도 근사해야 하므로 그것도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이상적인 작업실, 이상적인 집필공간을 꿈꿔보자.    


가구를 이리저리 옮겨 방의 구조를 바꾸는 것을 좋아한다. 저녁에 돌아온 남편이 아침과 달라진 모습을 보고 힘이 장사라고 나를 놀렸다. 목표가 생기고 결과가 기대되면 초인적인 힘이 생긴다. 지금 책상으로 쓰고 있는 것은 대학 졸업할 때 아버지가 사준 화장대였다. 체리목 필름이 붙여진 화장대는 반듯한 네모 거울이 분리되고 디귿자를 세운 단순한 디자인이라 마음에 들었다. 아버지가 사준 첫 선물이라는 의미가 있어서 버릴 수 없어 신혼살림에도 따라왔다. 책상으로 쓰기 때문에 네모 거울은 항상 열어놓는 방문과 벽 사이에 두었다. 거울을 잘 보지 않으니 우리 집에서 거울은 면벽 수행을 하고 있는 셈이다.


작업실에는 필름 붙인 가짜 나무 말고 원목 나무 책상을 둘 것이다. 든든해서 흔들리 않고 커다랗게 넓은 책상을 커다란 창문 앞에 붙여둘 것이다. 창 밖은 숲이 우거져 큰 나무의 중간 부분과 무성한 잎이 보인다. 나뭇가지 사이로 저 멀리 산수화에서 본 것처럼 겹쳐진 산 능선이 보인다. 가려지는 것 없는 넓은 하늘과 구름도 보일 것이다. 한쪽에 호수나 강도 걸쳐져 보인다면 너무 욕심일까? 꿈꾸는 것은 한계가 없으니 강물도 담아보자. 아침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는 은결을 보며 내 마음도 희망적인 것을 품으며 설레는 하루가 시작될 것 같다.


책상 위에는 듀얼 모니터와 데스크톱 컴퓨터를 둘 것이다. 모니터 한 개는 세로로 세워서 공책처럼 보이도록 둘 것이다. 타자기와 타격감이 비슷하는 기계식 키보드 마련할 것이다. 어릴 때 친구 집에서 묵직한 검은 금속 타자기를 본 적 있다. 친구의 삼촌이 쓰는 방이었는데 책상 위에 타자기 한대만 올려져 있었다. 호기심이 가득한 우리가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활자가 쓰인 버튼을 누르니  쇠붙이 한 개가 냉큼 일어나 턱 소리를 내며 종이에 무늬를 찍고 다시 누웠다. 우리는 함박 웃으며 마구 버튼을 눌렀고 그때마다 종이를 끼운 쇠붙이도 리듬을 타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했다. 친구는 마지막에 이렇게 하는 거라며 레버를 내렸다. 군대 제식 훈련하듯 종이를 끼운 쇠붙이가 순식간에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으로 돌아갔다. 종이는 아까보다 위로 올라가서 흰 부위를 드러냈다. 타자 치는 소리가 귀에 꽂힐 때마다 보이지 않는 생각이 글이 되는 물리적 현상을 보는 것 같았다.


평생 육체노동자였던 부모님은 조선시대 사람처럼 문을 숭상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우리를 호출해서 앉혀두고 옛날 책자로 만들어진 족보를 꺼내셨다. 전부 한자로 되어 알 수 없는 종이를 뒤적이며 우리가 원래 양반이었다고 했다. 과거시험 준비하는 몰락한 선비처럼 학교 가서 성적을 잘 받는 것이 우리 집을 일으킬 유일한 희망이라고 강조하셨다. 부모님은 없는 살림에 방문 판매하러 온 계몽사 직원의 영업에 번번이 넘어갔다. 할부로 구입한 세계문학, 한국문학, 창작동화 전집이 비뚤어진 책장에 한가득 꽂혀있었다. 그 책을 읽었다면 지금쯤 훌륭한 작가가 되었을 것이다. 부모님의 기대와 다르게 나는 책에 손도 안 댔다. 풍요가 지나치면 가치를 모르게 된다. 아버지는 돈 버느라 늘 밖에서 시간을 보내셨고 그런 부모님을 따라 나도 해가 떨어질 때까지 밖에서 지냈다. 밥 먹으라 부르는 엄마의 부름도 놓치고 친구들과 뛰어다니며 노느라 바빴던 것이다. 지금도 학부모님들과 상담하면 아이가 책을 안 읽는다고 어떻게 해야 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방법은 간단하다. 부모님부터 TV를 끄고 스마트폰을 뒤집어놓고 책을 집으세요.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다.


책이 내게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면 타자기는 글쓰기를 구체적 행위로 느끼게 해 주었다. 글쓰기가 끝난 결과물로 남은 책 보다 만들어가는 과정의 글쓰기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허름한 책상 위에 무거운 타자기 한대만 있던 골방이 글에 대한 내 첫 기억이다. 그 기억이 하도 강렬해서 작가를 생각하면 타자기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내 이상적인 작업실에는 타자기를 대신할 기계식 키보드를 장만해야지. 글이 내 삶의 중심이 된다면 취향이 생길 것이고 연장도 그에 걸맞게 갖추게 될 것이다.


작업실의 세 면이 남았다. 두 면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꽉 채운 붙박이 책꽂이로 되어 있어 책장마다 빈틈없이 책을 꽂을 것이다. 오래 두고 펼쳐볼 소장가치 있는 책들만 남겨서 도서관처럼 인문, 사회학, 철학, 문학, 취미 등 분류해서 꽂아둘 것이다. 남의 집에 초대받으면 항상 책꽂이에만 눈이 간다. 책을 살펴보며 집주인의 취향과 현재 관심사를 추리하는 것이다. 우리 집에 온 사람에게 내 작업실의 책은 나를 보여주는 또 다른 단서가 될 것이다.


남은 한 면에도 창문이 있는데 창턱이 넓어서 긴 의자처럼 쓸 수 있다. 쿠션을 두어서 등을 기대고 무릎을 세우고 앉아 책을 읽을 것이다. 책에 가슴을 치는 문장이 나오면 창밖을 바라보며 벅찬 감정을 누릴 것이다. 문장이 가슴에 스며들면 협탁 위에 둔 커피나 차를 마시며 이어서 책을 볼 것이다. 예쁜 접시에 맛이 진한 쿠키도 올려두어야지.


이 창문 근처에는 그림 그리는 책상도 둬야 한다. 그림을 그려보니 지우개 가루가 많이 나와서 컴퓨터 있는 책상과 같이 쓸 수 없을 것 같다. 그림책상 옆에는 삼단 트레이를 두어서 그림도구를 담아두고 싶다. 지금은 드로잉 펜과 리라 수성 색연필이 내가 가진 그림 연장의 전부다. 그림도 내 삶의 중심에 가까워지면 그만큼 도구가 늘어날 것이다. 물질을 채워서 얻는 기쁨에 초연해지자고 다짐했지만 글과 그림을 도와줄 물건이라면 기꺼이 소비하고 소유하고 싶다.


내가 출판 편집자라면 유명 작가의 작업실을 사진으로 그림과 설명으로 자세히 소개하는 책을 기획해볼 것이다. 이미 그런 책이 나왔는데 내가 모를 수도 있다. 책 읽는 인구도 별로 없다는데 책 쓰는 사람의 작업실을 궁금해할 인구는 더 적어서 책이 안 나올 수도 있겠다.


일과 삶의 통합을 이루기 어려운 시대다. 생계를 위해 한정된 시간을 팔아먹는 일에 진력이 난 직장인이라면 반드시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자기만의 방이 안되면 자기만의 방구석이라도 마련하시길. 퇴근해서 들어가 있을 자기만의 공간 하나 장만하면 내가 나를 미워하는 마음이 용서되고 퇴사하고 싶은 충동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그릇장 속에 또 다른 teapot을 발견했다. 약탕기처럼 생겨서 손잡이와 주둥이가 내 취향이 아니므로 내가 샀을 리 없다. 선물 받은 건지, 누가 준 건지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래된 차주전자다. 이상적인 작업공간을 꿈꾸기 전에 마음의 공간부터 준비하자. 행복이 들어올 자리, 빈 공간을 사색으로 채워보자. 마음의 여백을 갖고 기다리면서 소망은 이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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