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한 밤에 들려주는 선생님의 꿈과 비밀

다음 정차할 역은 노량진입니다

by 혜윰

#83일차


3년 전 선배 선생님의 초대를 받아 연극하는 모임에 따라갔다. 꽃샘추위가 여전했던 어느 봄날, 회의실에는 주변 학교에서 모인 선생님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퇴근 후 뭔가를 해보고 자는 마음을 가진 다양한 나이의 선생님들과 어색한 첫인사를 나누었다. 우리는 한 달에 두 번 모여 기존 대본을 낭독하고 함께 연극 공연을 보러 갔다. 연극이 무엇인지 공부하며 선생님들의 면면을 알아갔다. 아이들에게 연극수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할 때는 선생님들의 서로 다른 교육철학도 엿볼 수 있었다.


대본 작업부터 소품 준비, 음악, 의상, 동선 체크, 무대 대관, 팸플릿, 포스터 제작, 홍보영상을 만들기까지 모든 활동을 우리가 직접 준비했다. 베테랑 연극인을 약간의 사례비를 드려 연기 선생님으로 모셔왔다. 출근하면 선생님으로 지내다가 퇴근하면 학생이 되어 연극을 배웠다.


조용한 성품에 작은 체구를 가진 연기 선생님이 우리에게 시범을 보이면 팔다리가 두배 길어진 것처럼 존재가 크게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말의 어조와 뉘앙스, 시선처리, 몸의 각도 같이 그 전에는 눈여겨보지 못한 것들이 생각과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훌륭한 언어가 된다는 발견에 흥분했다. 선생님의 몸을 염탐하며 훔칠 수 있다면 선생님의 재능을 가져와 내 몸에 씌우고 싶었다. 연기를 통해 내가 얼마나 보이지 않는 형틀을 이고 살며 몸에 갇혀있는지 깨달았다. 삶의 쾌감을 놓치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몸만 그런 게 아니었다. 생각이 무겁고 감정을 드러내는 표현도 어눌했다. 마음이 무수한 걸림돌에 붙들려 있다는 것을 연기를 해보며 알았다.


연기 선생님처럼 자유롭고 싶어서 선생님이 지나가며 한 코멘트도 대본에 깨알같이 적었다. 늦은 밤 연습을 끝내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 거울 속 나를 상대 캐릭터라 생각하고 대사를 치고 어울리는 몸동작을 연구했다. 다음 날 저녁 선생님 앞에서 내가 고민한 연기를 보여드릴 때는 두려움과 설렘,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교차했다. 심혈을 기울인 부분을 선생님이 알아봐 주고 가능성을 표현해주었을 때는 짜릿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이런 느낌이겠구나. 연극을 배우는 입장이 되어보니 학생을 이해하고 배움의 동기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돌아보면 2019년 그 해의 기억은 온통 연극으로 점철되었다. 찬바람이 부는 11월 초, 예정된 공연 날이 다가왔다. 수업을 마치고 소품과 포스터, 의상을 바리바리 챙겨서 문화회관으로 달려갔다. 예산 문제로 하루만 대관했기 때문에 리허설할 시간이 없었다. 주말에도 빈 교실에 모여 등장과 퇴장, 등장인물의 시선과 동선 타이밍을 수없이 연습해왔던 터라 불안하진 않았다.


연극공연은 그날 두 번 무대에 올렸는데 1회보다 2회 때가 긴장도 풀리고 연기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어두운 무대 뒤 대기실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등장 순서를 기다렸다. 그토록 연습했던 시간들이 오늘 이 무대로 끝난다고 생각하니 긴장되었다. 도대체 김연아는 어떤 강심장을 가진 것일까 절로 존경심이 들었다. 동선을 머리로 그리고 내 대사의 앞, 뒤 선생님과 대사의 합을 시뮬레이션으로 돌려보았다. 동작과 표정을 과장되게 해야 관객이 겨우 알아본다는 생각을 되뇌며 손바닥에 난 땀을 연신 허벅지에 문질렀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 앞으로 나가는데 객석의 숨소리가 다 들리고 얼굴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떨리는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시선을 저 위 조명과 음향 조정실에 두고 연기했으니 어색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컴컴한 객석을 가득 채운 지인들과 가족, 동료 선생님들의 어렴풋한 실루엣, 선생님이 연기한다고 보러 온 제자들, 연극을 마친 후 아이들이 기다렸다가 사인해달라고 했던 일, 공연 포스터를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한 기념컵을 나눠가지며 뒤풀이했던 일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한참 뒤 핸드폰을 바꾸면서 한 편의 소동극 같았던 그날 지인들과 찍은 사진을 보았다. 사진 속 내 얼굴이 다른 사람처럼 보여 금방 찾지 못했다. 나는 그렇지 못한데 연극에서 맡은 "당차고 밝은 선생님"처럼 눈빛에 생기가 돌고 확신에 차 있었다.


공연을 일주일 앞두고 단골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다듬었었다. 십 년째 이곳을 다니지만 나는 미용사에게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조용한 손님 중 하나였다. 미용사는 내게 평소와 다른 사람 같다고, 굉장히 에너지 넘치고 활달해 보인다며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아, 연기가 성격을 바꿀 수 있구나! 연기를 하며 나와 다른 자아를 옷 입고 그 사람으로 살아볼 수 있었다. 연기를 계속하면 답답하고 마음에 안 드는 내가 시원스럽고 매력적인 성격으로 바뀔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의 문턱이 낮은 만만한 사람, 성룡의 취권처럼 경직되지 않은 몸,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보헤미안의 정체성으로 살면 어떤 기분일까? 규율과 원칙을 반복하는 학교 선생님의 관료적인 면모를 지우고 싶었다.


다음 캐릭터는 선생님이 아닌 자유인을 맡아 연기하고 싶었지만 코로나가 터지며 연극 모임은 잠정 중단되었다. 평생을 연극에 바쳐온 연기 선생님의 생활고가 짐작되어 그분의 안부도 걱정되었다. 모든 문화예술인들이 숨죽이며 이 시기를 버티고 있겠지. 10월 말이면 위드 코로나 계획이 발표되고 서서히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다시 연기할 수 있을까? 연극 모임이 열린다면 한걸음에 달려가 나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을 덥석 집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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