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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Oct 08. 2021

꿈속을 헤매다

자주 꾸는 꿈

#84일차

모든 학교는 밖에서 보면 단순한 건물에 어느 학교나 비슷비슷해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면 생각보다 복잡한 구조에 놀랄 때가 많다. 본관과 별관이 뱀처럼 긴 통로로 비스듬히 이어져 지금 올라선 곳이 2층인지 3층인지 헷갈린다. 처음 간 학교라면 교실 배치도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향한 길을 파악하기 힘들다. 선생님들은 5년마다 근무하는 학교를 옮긴다. 새 학교에 갈 때마다 인터넷 지도가 투시하지 못하는 학교 건물 내부는 미지의 미로 체험같다. 학교의 구조가 익숙해지고 꼬아놓은 교실 배치 체계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게 될 때쯤 학교를 떠난다.


처음부터 규모를 계획하고 지은 것이 아니라서 그렇다. 학생수가 늘어나면 건물을 하나 더 짓고 그 둘을 억지로 연결하여 잇다 보니 모양새가 좋지 않다. 저출산으로 인구수가 다시 감소하고 있어 남은 교실은 음악실, 무용실, 도서실, 특별활동실로 개조된다. 학교에 새로 부임한 선생님은 아이들을 줄세워 엉뚱한 장소로 인솔해 학생들을 웃게 해주기도 한다.


깊은 잠을 못 잘 때마다 자주 꾸는 꿈이 있다. 복잡한 구조의 학교 안을 헤매다가 우리 반을 못 찾아가는 것이다. 이미 1교시는 시작되었는데 나는 아직 교실에 도착하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선생님이 없는 교실 풍경이 걱정스럽게 펼쳐진다. 아이들은 왜 우리 선생님 안 오나 복도로 뛰어나오고 소란스럽게 떠들 것이다. 양 옆반 선생님들은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조용하지 않은 우리 반을 비난하거나 의아해하겠지?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어떻게 난관을 빠져나가야 할지 노심초사한다. 내가 들어간 입구는 계단마다 복도로 통하는 문이 잠겨 있다. 할 수 없이 4층 끝까지 올라갔더니 비품 창고로 가로막혀 문으로 다가갈 수 없게 되었다. 먼지와 거미줄을 헤치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와 건물 밖으로 나왔다.


전체 학교가 보이도록 운동장 끝으로 달려간다. 이미 각층의 교실마다 정상적인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 음악수업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창문에는 선생님이 칠판에 무언가 쓰고 아이들은 앉아서 공부하는 모습이 보인다. 다급해진 나는 손으로 그늘을 만들어 학교를 샅샅이 살펴보고 반대쪽 입구가 열려있는 걸 발견한다. 저길 통해서 4층 우리 반으로 가는 길이 나올 것이란 밝은 전망을 안고 다시 학교 안으로 침투한다.


그곳은 급식실 뒷문과 연결된 곳으로 바닥에 물이 흥건해 미끄럽다. 옷이 젖을까봐 발 디딜 곳을 찾다 여러 번 발을 삐끗한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균형을 찾다가 허리 척추뼈가 어긋나는 느낌에 오싹한 통증이 온다. 급식실을 지나면 내 앞에는 역사가 느껴지는 묵직 돌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햇볕으로 뜨거운 바깥공기와 다르게 실내 외진 곳에 놓인 돌로 된 계단 난간은 차갑다. 돌계단을 올라가 드디어 천장이 높은 복도 안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본관은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것으로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교실이 있는 커다란 건물이다. 왼쪽 교실은 6-1, 6-2, 6-3, 6-4로 이어지는데 오른쪽 교실은 4-1, 4-2, 4-3로 가다가 그다음 교실이 음악실로 바뀌어 있다. 내가 들어가야 할 4학년 4반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미 1교시는 끝나가고 쉬는 시간이라 아이들이 복도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아이들을 하나씩 살피며 우리 반 아이가 있는지 찾지만 낯선 얼굴들이 무심하게 나를 바라본다.  


대게 이런 식이다. 건물 내부 구조나 크기가 달라질 뿐 내용과 결말은 비슷하다. 복잡한 미로 속을 헤매다 끝내 내 교실에 못 들어간 채 잠에서 깬다. 불현듯 시계를 보면 늦지 않았다. 손을 더듬어 머리맡에서 핸드폰을 찾아 검색창에 "헤매는 꿈", "학교 꿈"을 입력해 꿈이 내포하는 의미나 찾아올 인생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봤다. 별 내용이 없다는 걸 확인하면 다시 "개꿈"을 검색하며 오늘 하루 일진이 나쁘지만 말아라 하는 심정이 되어 하루를 시작한다.


요즘은 학교 안을 헤매다 마을을 헤매는 꿈을 꾼다. 영화 매드 맥스처럼 사막과 척박한 계단식 산지촌이 이어지는 마을이 배경이다. 마을의 초입에서 권력자들이 사는 마을 가장 안쪽까지 들어갔다가 위험한 순간을 가까스로 피한다. 선량함을 가장한 마을 사람들은 조직적으로 암암리에 나를 감시한다. 그들을 의심하는 것이 들키지 않도록 순진한 사람처럼 굴며 탈출로를 찾는 꿈도 종종 꾼다.


꿈이 갖는 예지력을 경험하지 못한 나는 꿈의 의미를 물으러 해몽가나 역술인을 찾아갈 생각이 없다. 꿈이 무의식의 반영이라면 내가 자각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 시간에 쫓기고 교실을 못 들어가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생님으로 살면서 내가 모르는 불안이 자라고 있나? 무엇에 대한 두려움일까? 아침에 가진 의문은 바쁜 하루가 지나며 번번이 희미해진다.


초등학교는 입시의 영향권에서 멀리 있어 아이들과 재밌는 공부거리를 찾아 즐겁게 지내고 있다. 월요병이나 금요일만 기다릴 만큼 학교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편도 아니다. 현실의 나와 다르게 꿈속의 나는 미로를 빠져나오지 못하는 딱한 처지에 놓여있다.


깨고 나면 허망한 꿈일 뿐이라고 내게 남은 느낌은 곧 사라질 것이라고 마음을 다독인다. 꿈속에서 좋아하는 배우와 썸을 타거나 돼지나 황금이 나와 로또 당첨되는 꿈을 꾸면 하루 반나절은 기분 좋게 지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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