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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Oct 06. 2021

비상구

1일1드로잉

#82일차

*2021.10.6. 10분 글쓰기*


10월에 읽기 시작한 책

(표지 사진과 함께)


아버지가 갑자기 안 좋아지셨다. 어떤 기운을 느낀 건지 오늘 일부러 조퇴하고 아버지 집에 가있었던 셋째 언니가 119를 불렀다. 코로나19 이후 병원이 39도 넘는 환자를 입원시켜 주지 않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 다행히 아버지는 38.6도였지만 주로 다니고 있는 세브란스병원은 응급격리실이 없어 받아주지 않았다. 여의도성모병원이 아니었다면 아버지와 언니를 태운 구급차는 충청도에 있는 병원까지 갈 뻔했다. 백방으로 알아봐 준 구급대원에게 감사했다. 아버지는 해열제와 항생제에 이어 산소호흡기를 달아야 했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의학지식이 쌓여간다. 오늘은 산소포화도가 95 이상이어야 정상이라는 정보를 습득했다. 밤이 깊어도 떨어질 줄 몰랐던 체온이 조금 호전되었고 산소포화도도 정상 범위로 들어갔다. 호흡기를 떼고 콧줄로 산소를 공급하게 되었고 셋째 언니가 아버지 곁에 남았다. 바깥에서 대기하던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15시간 동안 밖에 있으며 응급실 안에 못 들어가 보고 아버지 손을 잡아드리지도 못했다. 하루종일 전화와 카톡을 주고받고 사진으로만 아버지를 확인했다. 급하게 같이 격리된 언니를 위해 치약 칫솔 음식을 구호물품처럼 전달했다. 돌아오는 길 가방 속에 있는 책을 꺼내 사진을 찍고 흔들리는 차 안에서 글을 남긴다. 하필 제목이 문장강화, 앞의 두 글자를 떼고 아버지를 집어넣고 싶다. 이런 와중에도 글을 쓰고 내 옆에는 글에 대한 책이 붙어있구나. 미친 걸까?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를 걱정하고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온 마음을 다해 기도했다. 그 나머지 시간을 쪼개어 나는 글을 쓴다. 산소포화도가 갑자기 83이 되었을 때 대낮처럼 밝았던 커피숍이 순식간에 어둡게 변하는 경험을 했다. 하염없이 눈물만 흐르고 어딘가를 향해 이 상황만 넘기면 착하게 살겠다고 기도했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잊어버릴 찰나의 생각을 남길 수 있어 좋구나. 글이 내게 그런 공간을 허락해주었구나. 급박한 상황에서 글쓰기가 흔들리는 나를 붙잡고 정신을 강화시켜 주는구나.

12월, 비상구

                                  김경민

 

한 사내가 슾 속으로 달려 들어간다

세상은 햇살의 감옥이다

숲은 비밀스러운 계단으로 가득하고

그 주름 속에 잠시 숨기 위하여

사내는 빠르게 햇살 속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나는 한때 가문비나무였던 카페에 앉아있다

서가에 책들이 가득 꽂힌 찻집 의자에서

초록색 비상구 등이 켜진 문을 바라본다

다른 계절로 달려 나가는 유일한 출구

나는 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린다

 

창밖으로 노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불려간다

몇 마리의 새들은 여린 가지들을 흔들고

한 줌의 햇살과 몇 방울의 눈물이 마른 자국

마음 탁자 위로 푸른 저녁 빛이 내려오면

유리 손가락이 지나간 몇 문장을 적는다


카페 문이 열리고 슾 속에서 여자가 나온다

한때 그녀가 걸었던 슾길도 모두 사라지고

푸른 골목의 발자국들 모두 지워지고

어제의 햇살 감옥이 그녀를 다시 가둔다

비상구 속으로 지금 누군가 달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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