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갑자기 안 좋아지셨다. 어떤 기운을 느낀 건지 오늘 일부러 조퇴하고 아버지 집에 가있었던 셋째 언니가 119를 불렀다. 코로나19 이후 병원이 39도 넘는 환자를 입원시켜 주지 않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 다행히 아버지는 38.6도였지만 주로 다니고 있는 세브란스병원은 응급격리실이 없어 받아주지 않았다. 여의도성모병원이 아니었다면 아버지와 언니를 태운 구급차는 충청도에 있는 병원까지 갈 뻔했다. 백방으로 알아봐 준 구급대원에게 감사했다. 아버지는 해열제와 항생제에 이어 산소호흡기를 달아야 했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의학지식이 쌓여간다. 오늘은 산소포화도가 95 이상이어야 정상이라는 정보를 습득했다. 밤이 깊어도 떨어질 줄 몰랐던 체온이 조금 호전되었고 산소포화도도 정상 범위로 들어갔다. 호흡기를 떼고 콧줄로 산소를 공급하게 되었고 셋째 언니가 아버지 곁에 남았다. 바깥에서 대기하던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15시간 동안 밖에 있으며 응급실 안에 못 들어가 보고 아버지 손을 잡아드리지도 못했다. 하루종일 전화와 카톡을 주고받고 사진으로만 아버지를 확인했다. 급하게 같이 격리된 언니를 위해 치약 칫솔 음식을 구호물품처럼 전달했다. 돌아오는 길 가방 속에 있는 책을 꺼내 사진을 찍고 흔들리는 차 안에서 글을 남긴다. 하필 제목이 문장강화, 앞의 두 글자를 떼고 아버지를 집어넣고 싶다. 이런 와중에도 글을 쓰고 내 옆에는 글에 대한 책이 붙어있구나. 미친 걸까?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를 걱정하고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온 마음을 다해 기도했다. 그 나머지 시간을 쪼개어 나는 글을 쓴다. 산소포화도가 갑자기 83이 되었을 때 대낮처럼 밝았던 커피숍이 순식간에 어둡게 변하는 경험을 했다. 하염없이 눈물만 흐르고 어딘가를 향해 이 상황만 넘기면 착하게 살겠다고 기도했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잊어버릴 찰나의 생각을 남길 수 있어 좋구나. 글이 내게 그런 공간을 허락해주었구나. 급박한 상황에서 글쓰기가 흔들리는 나를 붙잡고 정신을 강화시켜 주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