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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Oct 05. 2021

할머니가 남긴 숙제

1일 1 드로잉-할머니

#81일차

내가 태어날 때 여든두 살이었던 할머니는 내가 5학년이 되었을 때 돌아가셨다. 나는 할머니가 삶의 종지부를 찍을 때까지 정신과 육체가 허물어져 가는 십여 년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 살았다. 기억의 첫 시작을 따라가면 골목 저 멀리에서 꼬부랑 허리에 지팡이를 짚었지만 걸음도 잘 걷고 정정한 할머니가 보인다. 할머니는 처음엔 손주들 이름을 잊었고 점점 시간 개념과 기억을 잊어가다 나중에는 집에 오는 길을 잃으셨다. 아버지는 여러 번 파출소에 실종 신고를 하고 보호소나 지하철 역에서 할머니를 찾아 데려오셨다.


할머니는 남이 내다 버린 것들 중에 쓸만한 것을 줍느라 골목을 다닐 때 항상 갈지자로 다녔다. 한 번은 시장 앞에서 할머니를 마주쳤다. 할머니가 창피해서 외면하고 빨리 걸어가는데 한 아주머니가 붙잡았다. "저 할머니가 부르는데 왜 모른 척하니. " 창피함에 죄책감까지 더해져 얼굴이 발갛게 된 내게 할머니는 쓰레기 주운 것을 내밀며 집에 갖다 놓으라고 했다.


인간은 오감 중에 후각에 가장 예민하다고 한다. 심리치료방법 중에 안 좋은 기억이 있으면 쓰레기장이나 오물처리장에 데려가서 그 일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있다. 악취와 부정적인 기억을 묶으면 뇌가 저절로 기억을 멀리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화장실에서 뒤처리를 깜박하거나 잘 못하셔서 항상 안 좋은 체취가 남았다. 냄새나는 할머니를 멀리하고 싶었던 내가 버릇없고 못된 아이 같아서 나 자신이 싫었다. 미워하는 나를 떠올리게 하니까 더욱 할머니 곁에 가고 싶지 않았다.


깡마른 할머니는 불같이 화를 잘 내셨고 고집을 많이 부리셨다. 할머니 증세가 심해질수록 부모님의 다툼도 잦아졌다. 시간이 갈수록 집안 분위기는 어두워갔고 가족들도 모두 지쳐갔다. 지금 와서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으려는 것이 아니다. 엄마와 할머니 사이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이 있었다. 젊은 날 할머니는 엄마에게 매운 시어머니였다고 했다. 몸이 약했던 엄마가 아들 귀한 집에서 내리 딸만 낳았다고 온갖 구박을 받았다는, 흔한 그 시절의 이야기는 삶 속에서 얼마나 잔인하게 파국을 남기는가. 존재가 짐이 되는 치매는 인내심의 끝이 어디인지 시험하는 형벌 같았다. 나는 할머니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가끔 집에 아무도 없으면 할머니 방에 들어갔다. 할머니의 고약한 냄새를 참아가며 나뭇가지 같은 팔다리를 주물러 드렸다. 단지 마음의 무게를 덜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어느 여름날 갑자기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말로만 있다고 들었던 고모들이 찾아왔다. 할머니 방문 앞에 서서 고모들이 곡하는 소리를 냈다. 아이고아이고 아이고- 느리고 메마른 단조의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그때 연탄 더미 위에 고모가 올려둔 핸드백이 떨어졌다. 고모가 곡하면서 잽싸게 핸드백을 주워 올리는 걸 보고 나는 고모들의 슬픔과 눈물을 의심했다. 상조회사에서 나온 아저씨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기운차게 하얀 광목천으로 나무토막 같은 할머니를 꽁꽁 싸맸다.      


어제까진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할머니였는데 오늘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할머니는 이 사람들이 반가울까? 겹겹이 가려진 사람들 틈으로 할머니를 보았다. 질끈 감은 눈, 움푹 들어간 볼, 앙 다문 입술... 할머니는 눈만 감았을 뿐이지 듣고 있어서 이 소동을 다 아는 것 같았다. 할머니- 부르며 어깨를 흔들면 금방 일어날 것만 같았다. 열두 살의 내가 할머니를 깨워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던가?     


살아계셨을 때 할머니를 보면 슬프고 마음이 아팠는데 돌아가신 날은 이상하게 담담하고 믿어지지 않았다. 남동생을 불러서 골목에 나가 캐치볼을 했다. 뭔가 큰일이 일어나도 그렇게 태연하게 행동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것처럼,  잠들었다 깨는 것처럼 할머니가 살아올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버지 험한 눈으로 야단을 쳤다.

"정신이 있어?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이 나쁜 놈들."     

어머니는 우리를 두둔했다.

"애들이 뭘 알아요? 몰라서 저러지..."     


그날 저녁, 언니들은 나를 불러서 이럴 땐 우는 거라고 가르쳐줬다. 이제 할머니를 영영 못 보게 됐는데 안 슬프냐며 나무랐다. 나는 그제야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한편으로는 할머니가 떠나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마음이 편했다.    


할머니의 흔적은 빠르게 지워졌다. 도배와 장판을 바르고 온기를 찾은 문간방은 이듬해 고3이 되는 큰언니의 방이 되었다. 책상이 들어가고 옷장이 생기자 할머니 방은 예전의 주인을 금세 잊었다. 보이지 않아도 할머니가 어딨는지 알게 해 줬던 할머니 냄새도 옅어졌다. 나는 추억도 아닌 그것을 뭐라고 부를지, 아직도 해소되지 못한 응어리처럼 할머니의 기억을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몇 년 전,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보았다.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할머니가 춤을 추고 여행을 하고 영화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할머니가 저럴 수 있구나. 세월 앞에 힘없이 소멸해가는 쓸쓸한 이미지가 아니었다. 누군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소망하던 것을 이룬 한창때의 모습을 그리지 않는다. 인생의 황혼길 저물어가는 삶의 말로에 선 내 모습을 상상한다. 지나온 인생을 긍정하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떠올려보는 것이다. 아녜스 바르다처럼 살다가 잊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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