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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Oct 10. 2021

가까운 사람이 커밍아웃한다면?

1일 1드로잉, 문라이트

#86일차

2000년 초반에 케이블에서 방영한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동성애자를 처음 보았다. 스탠퍼드는 주인공 케리의 가장 친한 친구로 패션을 사랑하는 공통분모를 가졌다. 그는 케리의 연애 상담을 돕고 직업적 고민을 넘어 성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편견 없이 솔직하게 나누는 이상적인 친구였다. 자유분방하고 쾌활한 그를 보면서 게이 친구를 사귀면 좋을 것 같다는 막연한 동경을 가졌다. 지인 중에 동성애자가 없지만 공중파 드라마에 나올 정도면 동성애 인구가 꽤 있을 것 같다고 짐작했었다.

유명인사들 중에 커밍아웃한 사람들이 많다. 애플의 수장 팀 쿡,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CNN의 앤더슨 쿠퍼, 작곡가 차이코프스키 ,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 그룹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양성애자), 작가이자 정신과 의사 올리버 색스까지 뛰어난 위업을 이룬 성공한 이들에서 동성애자를 찾을 수 있다. 패션산업에서 동성애자는 흔해서 샤넬의 칼 라거펠트, 톰 포드, 에디 슬리먼 등 매력적이고 재능 많은 패션 디자이너들과 모델들이 많다. 영화배우 중에도 동성애자들이 종종 있으며 성전환 수술로 성별을 바꾸고 아무 문제없이 배우 생활을 어가고 있는 경우도 있다. 영화 <인셉션>의 여주인공 엘린 페이지는 수술 후 엘리엇 페이지로 개명하고 남성으로 살고 있다.  

대학원에서 소수자와 여성학 수업을 들으며 성소수자를 진지하게 고민해볼 기회가 있었다. 여성학 수업에서 시간강사님이 수업 마지막 즈음 동성애자라고 밝혔었다. 강사님과 여자화장실에서 마주쳤을 때 굉장히 불편해하셨던 이유를 그제야 이해했다. 내가 다녔던 대학원은 올해 학생회에서 여성, 남성 화장실 외에 성중립 화장실로 "모두의 화장실"을 설치하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페이스북을 가입할 때 성별 선택란에 female, male 외에 기타 custom, other 가 생긴지 오래되었다.

소수자는 사회의 권력관계에서 소수의 위치에 처한 집단을 가리키는 말로 단순히 인구적으로 적은 숫자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사회의 지배적 가치 기준에서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차별받는 이들을 소수자라고 말하며 동성애는 오랫동안 박해받아왔고 가혹한 폭력에 노출된 역사가 있다. 사회는 소수자들이 주류 문화 속에서 크게 성공해야만 커밍아웃을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인정한다.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인정투쟁을 거치지 않고 평범한 이웃, 내 가족이 동성애자일 때 한치의 편견 없이 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몇 년 전 전국 각지에서 모인 선생님들과 2박 3일간 교사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 적 있었다. 여러 세션 중에 '내 이웃에 00이 산다면?'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세션을 시작할 때 이슬람교인, 고약한 노인, 노숙자, 난민, 한센병자, 흑인, 성소수자, 조현병 환자, 가출청소년 등 편견을 갖기 쉬운 이들의 리스트를 받았다.선생님들은 각자 이웃으로 만나기 싫은 사람을 3명 고른 뒤 토론을 하며 모임에서 최후의 1명을 남기는 활동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1위로 성소수자를 꼽았다. 이유는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해서 이웃이 된다면 자기 가족, 자기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아서였다. 나름 진보적이라고 생각했던 선생님들 속마음에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가장 강한 것을 보고 놀랐다.   

사람들은 특히 HIV 바이러스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이 강하다. 실제 AIDS는 수혈에 의한 감염이 대부분이고  성적 지향과 상관없는 문제인데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발언을 하는 핵심적인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성애 중심주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인 사회 주류 언론, 종교계의 부정적 태도와 탄압의 영향이 크다. 불과 몇년 전까지 세계 여러나라가 동성애를 정신의학적 질병의 하나로 분류하고 전환치료를 권고했다. 동성애를 일시적 일탈로 보거나 병리적 질환으로 보고 정신과 치료를 통해 이성애자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동성애자의 정체성에 대한 영화 <문라이트>가 떠오른다. 주인공은 왜소한 몸집에 가난한 흑인으로 영화는 그의 성장 시기에 따라  3가지 파트로 편집되었다. 주인공은 유년기일 때는 '리틀', 청소년기에는 '샤이론', 성인이 되어서는 '블랙'으로 호명된다. <문라이트>는 주인공이 유색 인종 정체성과 퀴어 성 정체성이 교차되며 자아를 형성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근육질의 마약 판매상이 된 주인공은 자신을 방임하고 학대했던 어머니 폴라와 재회한다. 폴라는 아들에게 참회하며 "너는 나처럼 잘못된 길을 걸어가선 안 된다. 네게 맞는 길을 찾아가라." 고 말한다. 재활원에서 나온 '블랙'은 과거 청소년기에 만났던 케빈이 일하는 식당에 찾아간다. 케빈은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한 가정의 가장 역할을 하며 지만 이 공허하다. 그청소년 시절 '샤이론'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지만 인생이 험난해질 것이 두려워 자신의 성적 취향을 부정했다. 케빈은 마초적 남성 문화에 따르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고 학교에서 많은 아이들에 둘러싸여 사랑하는 샤이론에게 무차별한 폭력을 행사하며 그와 이별했었다. 성소수자들은 커밍아웃을 한 대가로 치러야 할 고난이 너무 크다. 우리 곁에도 성소수자가 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고 두려움에 떨며 지내고 있을지 모른다.

성소수자들은 주변부, 경계지대에서 살아가고 있어 인생이 순탄하지 못하다. 이분법적 성별 구분, 이성애에 기반한 낭만적 사랑, 생계와 돌봄의 근간인 결혼제도를 토대로 한 근대 국민국가에서 성소수자는 국민의 범주에 포함되지 못한 채 범죄화, 병리화 되어 기존 체제와 불화하는 존재로 내몰린다. 특히 한국사회의 대표적 제도인 가족관계 등록부, 주민등록제도, 병역제도를 통해 성소수자는 철저히 시민권에서 배제되고 차별과 억압으로 위협받는다.

성소수자들은 차별받는 위치에 서있으므로 자기 분열, 분노, 자기 비난, 혐오, 중독, 우울 등 어두운 심리를 직면하는 시간이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는 주류 세계관에 대항해 저항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인식과 가치 질서를 고민하여 다채롭고 풍요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게 한다. 만약 그가 참모습을 부인하지 않고 세상 속에 자신을 드러내며 커밍아웃한다면 열렬히 환대하고 두 팔 벌려 안아줄 것이다. 선악의 이분법적 세계를 깨고 더 넓은 세계로 날아가느라 지친 날개가 쉬어갈 수 있는 쉼터가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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