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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Oct 15. 2021

투명인간 없는 세상

1일1드로잉, 바클라바

#91일차

*2021.10.15. 10분 글쓰기*


'투명인간'의 일상


2012년 당대표 후보를 수락하는 날의 연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 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6411 버스 새벽 첫차를 타고 구로에서 강남으로 출근하는 노동자들 대신해서 국회에서 싸워 준 그를 존경한다.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은 쉽지 않으니까. 2009년 노가 떠났고 9년 후 다른 노가 따라가며 세상은 매력을 잃고 한층 밋밋해졌다. 6월 항쟁으로 민주화의 열망이 들끓던 1987년 그 해 말 또 다른 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차갑게 식어버린 열정에 대한 배반감이 이랬을까. 누군가의 입을 대신해주는 정치인 말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졌다. <임계장 이야기>가 소중하고 한글을 처음 배운 칠곡 할머니들이 지은 시와 손수 써 내려간 시화가 보배로운 까닭이다. 당사자들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평생교육과 보편교육이 확충되어야 한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의 즐거움>에서 일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여한 없이 쓸 때  일 자체에서 가치를 발견하며 삶이 정당화된다고 말했다. 삶을 훌륭하게 가꾸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몰입이며 몰입은 여가시간보다 일할 때 자주 느낀다고 했다. 그 일이 명확한 목표, 뚜렷한 결과, 자신감, 힘에 부치지 않은 난이도, 정돈된 분위기를 줄 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하건 상관없다.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고 일을 대하는 태도와 일에서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배움이 삶의 질을 바꾼다.


일의 종류 때문에 투명인간이 되는 게 아니다. 투명인간에게 사람다운 색을 입히려면 일을 통한 자긍심과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여건이 필요하다. 처우개선에 대한 움직임은 우리끼리의 다툼이 될 때가 많다. 역사적으로 기득권 세력은 체제 전복의 위기를 넘기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피지배계층을 분열시키는 전략을 써왔다. 사회구조의 피라미드 말단부에 속한 사람들끼리 싸우며 본질을 망각한다.  


영화 007 시리즈의 주인공인 다니엘 크레이그는 자신의 재산 1800억 원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가수 스팅도 3000억 원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언했다. 미국 엘리트 사회 지도층은 세금 외에도 기부를 워낙 많이 해서 부시나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도 크게 흔들리거나 걱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뜻하지 않은 사람이 리더가 되어도 시민의식이 투철하고 사회 안전망이 든든하기 때문이다.   


투명인간은 없다. 청소노동자, 경비원, 택배기사, 오토바이 퀵배달, 주방 보조, 가사도우미 등 어떤 일을 하건 인생을 아름답게 가꿔가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런 사람으로 가득한 세상이 도래하길 소망한다. 


난민도 또다른 투명인간이다. 다문화 인권연수에서 터키음식인 바클라바를 보내주었다. 바클라바는 오스만 문화권의 나라들이 먹는 파이같은 디저트로 오랜 전통을 가졌다. 비영리단체 가버나움에서 난민여성들과 직접 만들고 수익금도 그들을 위해 쓰인다고 들었다. 이태원 터키음식점 유리진열장에서 본 것보다 더 먹음직스럽고 실제 맛도 최고였다. 틴케이스도 닦아서 써야겠다.



사는 이유

최영미


투명한 것은 날 취하게 한다

시가 그렇고

술이 그렇고

아가의 뒤뚱한 걸음마가

어제 만난 그의 지친 얼굴이

안부 없는 사랑이 그렇고

지하철을 접수한 여중생들의 깔깔웃음이

생각나면 구길 수 있는 흰 종이가

창 밖에 비가 그렇고

빗소리를 죽이는 강아지의 컹컹거림이

매일 되풀이되는 어머니의 넋두리가 그렇다


누군가와 싸울 때마다 난 투명해진다

치열하게

비어가며

투명해진다

아직 건재하다는 증명

아직 진통할 수 있다는 증명

아직 살아있다는 무엇


투명한 것끼리 투명하게 싸운 날은

아무리 마셔도 술이

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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