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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Oct 18. 2021

부산에 가면

1일 1드로잉, 쌍화탕

#93일차

*2021.10.17. 10분 글쓰기

내 취향의 노래 1곡


부산에 간 적 있다. 부산역 앞에서 마중 나온 지인과 재회했다. 그의 부모님은 부산 유지였고 그는 중견 기업의 오너였다. 젊은 나이 성공한 사람이 그렇듯 무엇이든 쉬워보였고 그늘이 없었다. 부산 지역 토박이인 지인은 우리를 이곳저곳으로 데려가 극진하게 대접해주었다.


달맞이 고개, 해운대, 광안리, 기장 앞바다.. 부산의 명소와 대표 먹거리를 빠짐없이 구경시켜주고 먹여주었다. 나는 맵기로 소문난 떡볶이집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지인은 자신도 모르는 곳을 안다고 우리에게 놀라면서 함께 떡볶이와 팥빙수를 맛보았다. 그는 고문에 가까운 매운맛을 왜 먹는지 모르겠다며 팥빙수만 퍼먹다가 나중에 떡볶이 집을 나올 때는 찾아올만했다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벌써 십 년 전 일이다. 그 사이 지인의 사업은 부침을 겪었고 그는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용기를 내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장소가 마음에 새겨지는 느낌은 그곳에서 알게 된 사람이나 그곳에 사는 사람과 묶여있다. 부산을 떠올릴 때마다 그의 안전과 평화를 기도하고 있다.


요즘 즐겨듣는 노래 리스트를 꼽아보니 지명이 들어가는 공통점이 있었다. 서태지의 소격동, 동물원의 혜화동,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 장범준의 여수 밤바다, 자이언티의 양화대교... 얼마 전 라디오에서 에코브릿지의 '부산에 가면' 노래가 나왔다. 가을이 되면 찾아듣는 곡이다. 최백호의 목소리는 가을에 잘 어울린다. 부산의 지명이 그의 음성에 실려 나올 때마다 부산에서 가봤던 장소와 그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부산에 가면 다시 너를 볼 수 있을까.

고운 머릿결을 흩날리며 나를 반겼던

그 부산역 앞은 참 많이도 변했구나.

어디로 가야 하나. 너도 이제는 없는데

무작정 올라가는 달맞이 고개에

오래된 바다만 오래된 우리만 시간이 멈춰버린 듯

이대로 손을 꼭 잡고 그때처럼 걸어보자.

아무 생각 없이 찾아간 광안리

그때 그 미소가 그때 그 향기가

빛바랜 바다에 비춰 너와 내가 파도에 부서져 깨진 조각들을 마주 본다.

부산에 가면


https://www.youtube.com/watch?v=VcnD6Q3DAu0



지금은 고인이 된 박성연의 '바람이 부네요' 도 가을에 꼭 는 노래다.

https://www.youtube.com/watch?v=SV_6_RmvYNw


오늘 바람은 세찬 칼바람이었다. 가을의 끝자락을 알리는 바람은 유난히 마음을 뒤숭숭하고 쓸쓸하게 만든다.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옷깃을 여미며 '부산에 가면'과 '바람이 부네요'를 들으며 왔다. 어떤 가수의 목소리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다. 그의 인생에서 엉키거나 맺힌 일들이 도드라져 삶의 마디마디를 이루어 시간이 쌓여야만 가능한 존재감 있는 소리를 낸다. 그런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 설명하지 않아도 이심전심으로 이해받는 기분이 든다. 귀를 즐겁게 하는 노래와 다르게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와 위로받고 싶은 지점을 명중한다. 두 가수의 목소리가 앙상해진 마음을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져주어 오늘 밤 깊은 잠을 청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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