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윰 Oct 18. 2021

나의 호시절

1일 1드로잉, 롤케이크

#94일차

내가 몸담고 있는 연구회에서 회복적 서클 연수를 진행하고 있다. 회복적 서클은 도미닉 바터가 브라질 빈민가에서 시작했던 사회개혁운동을 모델로 한다.


연수는 교사들이 회복적 서클의 실제를 연습해서 현장에 적용해볼 수 있도록 서클 개념과 방법 안내-서클 시연-서클 실습-성찰로 구성된다. 시연과 실습은 대략 서클 진행자-학생 A-학생 B의 체제로 이루어진다. 역할극이 다루는 사건은 가상의 사연을 놓고 하거나 학교에서 자주 일어나는 갈등사례에서 표본을 가져온다.


학생 A와 B는 친한 사이였다. A는 학교에서 활달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성격이다. B는 A의 그런 점이 버거웠고 나중에는 A에 대한 험담과 함께 "A와 놀지 말자."라는 말을 다른 아이들에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A는 아이들이 평소와 다르게 자신을 받아주지 않고 어울리려 하지 않는 낌새를 알아차린다. 그러던 차에 C를 통해 B가 주도해서 놀지 말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고 이 문제로 괴로워하다가 담임선생님을 찾아간다.  


오늘 연수에서 참여 선생님 중 두 분이 학생 A와 B의 역할을 맡았다. "그때 그 일로 인하여 지금 마음이 어떤지 누가 무엇을 알아주었으면 하나요?" 질문을 받은 A에게서 외면받은 상처와 아픔, B에 대한 배신감, 서운한 마음이 쏟아져 나왔다. B는 그 이야기를 들은 대로 돌려주었다. 이번에는 B가 이 자리로 오기까지 많이 힘들었고 선생님한테 나쁜 아이로 찍혔을까 봐 불안했다고 털어놓았다. A도 들은 대로 B에게 이야기를 다시 돌려주었다.


이어서 "그때 그 일은 그렇게 했지만 자신이 진심으로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누가 무엇을 알아주었으면 하나요?"라는 핵심 질문을 한다. B는 A가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고 자신의 기분은 존중해주지 않는 것 같아서 A가 자신의 입장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그런 말을 한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A는 들은 대로 돌려주었다. A는 B와 친구들이 자신을 따돌리는 것 같아서 걱정이 많이 되었고 친구가 없어질까 봐 두려웠다고 말했다. 다시 관계가 좋아져서 잘 지내고 싶었고, 그럴 수 있을까 싶어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다고 했다. B는 들은 대로 돌려주었다.


대화란 말하기와 듣기가 5:5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말하기보다 듣기가 훨씬 비중이 높으며 잘 듣는 것이 대화의 핵심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듣지 못한다. 너무 많은 생각이 우리 안에 가득하고 이야기를 들으며 동시에 판단하거나 평가하고 이를 표현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대화 문제로 비롯되며 그것은 자기감정에 대한 이해 부족과 공감 경청의 부족에서 일어난다.


진행자가 질문을 하면 곧바로 대답이 척척 나오지 않는다. 침묵도 일종의 표현이며 그 안에서 A와 B는 지금 자신의 마음과 당시의 진짜 의도가 무엇이었나 헤아리게 된다. 공백 끝에 참았던 숨이 터져 나오듯 연약한 자아가 용기를 낸다. 정적을 깨고 내면의 이야기를 꺼내면 그토록 들어주길 원했던 상대가 그의 목소리를 통해 내 이야기를 잘 듣고 다시 돌려준다.  


살면서 막혔던 인생 문제가 변곡점을 만나 새로운 방향으로 꺾어지며 상승할 때가 있다. 내게 회복적 서클은 교사의 삶으로서 맞이한 변곡점이었다. 회복적 서클을 만난 것은 이 지구 상에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기쁨과 현장에 적용되변화를 일으키는 사례를 면서 교직의 전환점이 되었다. 교사로 살며 답답하고 힘들었던 일들, 동료들과의 관계, 학생들, 학부모와의 관계, 교실 공동체를 새롭게 보게 되었다.


미취학 아동 시절은 매일매일이 햇빛 찬란한 봄날이었다. 아침에 눈뜨면 형제들이 늘 복작대며 함께 지내는데 특별히 하는 일이 없어도 사람이 많으니 절로 신이 났다. 가끔 치킨 한 마리에서 다리 두 개를 누가 먹을 것이냐는 싸움, 내 몫의 치킨을 아껴 먹는다고 접시에 담아 두었다가 다음 날 아침 누군가 홀랑 먹어치워서 분개한 일도 있었다. 그런 일은 범인을 색출하는 탐정놀이로 이어지고 발각된 남동생은 너무 먹고 싶었다며 용서를 구한 뒤 다음 치킨을 저당 잡혀주며 즐겁게 마무리되곤 했다.   


나에게 학교는 최초의 시련과 억압, 분노와 억울함 등 부정적 감정을 겪어보게 한 본거지였다. 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았고 누군가 그 사실을 알아챌까 봐 두려웠다. 학생 신상정보에 적는 주소란, 부모님 직업란을 자신 있게 채우지 못하고 대강 얼버무려 적었다. 임원선거에 나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에게 짐을 지울까 봐 포기했다. 선생님들의 관심 영역 안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언제나 바깥 가장자리에 맴돌았다. 선생님들의 관심을 받으려면 문제아가 되거나 공부를 빼어나게 잘해야 가능했지만 어느 모로 보나 노바디에 속했다. 성격도 과감하지 못해 선생님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당차고 쾌활한 그룹에 속하지 못하고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중심부를 넘어다보며 침만 꿀꺽 삼키는 아이였다.


중학교 때 체육선생님이 형제가 2명인 사람, 3명인 사람 점차 숫자를 늘려가며 물었었다. 손드는 아이들이 점점 줄더니 5명인 사람에서 나 혼자 손을 들었었다. 한쪽 입을 올리며 소리 없이 웃던 선생님이 자식을 많이 낳는 건 예전 사고방식이며 야만인이라고, 현대로 갈수록 조금만 낳는다고 말했다. 귀까지 얼굴이 빨개진 나는 그 후로 선생님들이 질문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저의를 살피는 버릇이 들었다.


교사가 된 지금 나는 교실에 앉아있는 아이들 하나하나가 그때의 나로 보일 때도 있다. 선생님과 말 한마디 못하고 집에 가는 아이, 선생님이 나에 대해 알고 있을까? 자신 없는 아이,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충분한 애착이 형성되지 못해 대신 선생님에게 바라는 아이, 도무지 학교 공부가 재미없는 아이, 학교는 뭘 하지 말라는 말만 잔뜩 늘어놓는 곳, 과제를 하면 그 정도 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잘했다 못했다 소리만 듣는 곳, 목소리 크고 자신감 있는 아이만 주목받는 곳, 운동 못하고 공부 못하고 뭐 특별히 잘하는 것 없으면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지내야 되는 곳, 가족의 추억을 발표하는 시간에 나는 가족들과 외식 한번 못해봤는데 친구들은 해외여행 간 이야기를 말하고 있고 서서히 다가오는 내 차례를 기다리며 머릿속이 까매지는 곳, 나 하나쯤 빠져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곳...


그때의 학생은 자라서 교사가 되었고 그때의 내가 학생이 되어 교실에 앉아 있는 것처럼 역할이 바뀌었다. 우리는 모두 선한 존재이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 교실은 안전한 공간으로 모두가 주인이 되고 가면과 보호막을 벗고 자신을 드러내어 말해도 함부로 판단하거나 평가받지 않는다. 학급은 서로를 존중하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공동체이다. 선생님과 학생을 포함한 학급 구성원은 모두 서클의 중심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어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


회복적 서클로 학급을 운영하며 나는 기억의 각색을 하고 있다. 이미 결말이 지어진 시나리오를 다시 바꾸어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반전의 영화가 만들어질 지 아모르지만 나의 호시절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작가의 이전글 부산에 가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