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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Oct 19. 2021

친애하는 선생님께

1일 1드로잉, 안부

#95일차

  친애하는 선생님께  

  차가운 바람이 잦아드는 저녁입니다. 지난봄 찾아뵌 후 겨울이 다 되어가는 동안 선생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네요. 고질병처럼 달고 계신 불면은 요즘 어떠신지요? 불면의 고통을 알지 못하는 저는 선생님의 괴로움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정신과 약 대부분이 수면을 강력하게 끌어오는 것을 보고 잠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중에야 알아차렸습니다. 저는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파커 파머의 신뢰 서클을 도입한 <마음의 씨앗>에 대해 소개해주셨던 날이 생각납니다. 대학원 수업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데 교사들이 꼭 다녀왔으면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금요일 6교시 수업을 마치고 부랴부랴 가방 매고 용산에 가서 가평역으로 가는 기차를 탔었죠. 그 가을날, 화려한 낙엽으로 물든 산속에 위치한 바람물연구소에서 보낸 그림 같은 시간 이후 저의 교직생활은 달라졌습니다. 자연스럽게 비폭력대화, 회복적 서클, 회복적 생활교육을 접하게 되었고 지금은 학생들과의 관계가 가까워지고 학교에서 지내는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선생님이 매번 수업을 열거나 마칠 때 시를 읽어주신 덕분에 시를 읽는 재미를 알게 되었지요. 시는 난해하고 이해의 영역을 넘어서 있는 것이고 소수의 비범한 사람만 즐기는 줄 알았어요. 시를 읽는 이유, 영혼과 정신적인 것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임을 일깨워주셨지요. 야간 대학원에서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을 듣고 나면 항상 막차 타러 뛰어가야 했어요. 덜컹거리는 전철 안에서 가슴이 뛰는 건 숨차게 달려온 탓만은 아니었죠. 선생님을 통해 바라본 앎의 세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늙은 학생들을 앞에 두고 수업하며 보여주신 선생님의 열정과 가르치는 사람의 사명감을 기억합니다. 대학원을 졸업하는 날 선생님을 향한 헌사의 편지를 제가 맡게 되었던 건 우연이 아니었지요. 


  가끔 선생님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워 보일 때가 있어요. 그 불안은 지식인의 숙명이 아닐까 생각해봐요. 공기의 흐름에 일렁이는 촛불처럼 당연한 것들을 앞에 두고 흔쾌히 흔들리며 알고 있는 자의 권위는 내려놓으셨지요. 선생님은 보물을 찾는 아이처럼 지금도 도서관에 가장 일찍 들어가셔서 매년 같은 이름의 강좌인데 수업 내용을 새롭게 준비하시죠. 지난 수업에서 요즘은 종교를 가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는 대신 SBNR(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다, Spiritual But Not Religious) 인구가 늘고 있다고 하셨어요. 덕분에 제가 종교집단에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선생님이 노회한 대학원생들 앞에서 실패담을 담담하게 꺼내실 때는 말리고 싶은 적도 있어요. 남들 다 하는 미화도 안 하고 수치의 경험을 수업 소재로 내어 놓는 것은 그만큼 학생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겠죠. 


  선생님이 부족한 저에게 글쓰기의 세계를 열어주셨던 일은 빛나는 별처럼 제 마음에 박혀있습니다. 자신을 표현하기 전에는 자신을 알 수 없다고, 선생님은 제가 글을 써서 발표하고 제 글이 많은 사람에게 읽히도록 추천해 주셨어요. 교사의 정체성과 학교의 본질, 교직관, 학생의 존재, 배움과 가르침의 의미에 대해 탐구하고 글을 쓰는 교사가 되길 바라셨지요. 글을 쓰는 학교 선생님이 별로 없다고, 그래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일들이 많다고 하셨어요. 존경하는 선생님이 잠재력을 알아봐 주고 기대를 걸 때 학생은 무엇이든 감내할 수 있는 자신감과 충만한 긍지가 생긴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삶의 방향을 바꿀 만큼 강한 힘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반 아이들을 알아봐 주는 한 사람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결코 어디서 본 적 없는 새로운 글, 자신만의 글을 쓰라고 하시며 빈약한 글을 부끄러워하는 제 마음도 배려하여 칭찬과 함께 제안하고 글을 고쳐주셨어요. 상암동에서 뵌날 나눈 이야기가 생각나요. 선생님이 제게 베푼 은혜를 선생님께 다시 돌려드릴 수 없다고요. 나중에 저와 같은 제자를 만나서 똑같이 해주며 갚는 거라고요. 스승과 제자 사이에 마음과 마음이 그렇게 흘러가며 세상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항상 이기는 쪽보다 지는 쪽, 비주류, 주변부의 삶과 고통에 공명하며 그들을 위한 글을 쓰고 세상을 살만한 곳이 되도록 새로운 지평을 여는 노력을 하고 계시지요. 저도 선생님처럼 연민의 마음으로 자신과 상대방,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푸르게 깨어있는 정신을 가진 선생님처럼 저도 다가올 봄을 부끄럽지 않게 맞이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셨으면 합니다. 건강하지 않거나 늙으면 불행하고 우울한 것 마냥 젊음과 건강을 찬양하는 사회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한동안 '건강하세요'라는 인사를 피했습니다. 제가 선생님 기대에 부응하고 후세대에 은혜를 갚는 모습을 보시려면 아무래도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불면의 병력이 오래되었다고 괜찮다고 하셨지만 오늘 밤은 숙면에 드시길 바랍니다. 바라면 이루어질 거란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저는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안부>라는 시를 선생님께 띄우며 편지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전화나 문자로 쉽게 연락할 수 있지만 선생님의 고요한 시간을 방해하거나 불쑥 소중한 하루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 안부를 묻는 일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조심스럽고 쉽지 않고 흔하지 않아서 그리움이란 말의 의미를 알게 되어 좋습니다. 그래서 지난 봄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뵌 날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겠지요. 선생님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저도 잘 지내고 있겠습니다. 


2021. 10.19. 

선생님이 그리운 제자 올림. 




안부


-윤진화



잘 지냈나요?

나는 아직도 봄이면서 무럭무럭 늙고 있습니다.

그래요. 근래 '잘 늙는다'에 대해 고민합니다.

달이 '지는' 것, 꽃이 '지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

왜 아름다운 것들은 이기는 편이 아니라 지는 편일까요.

잘 늙는다는 것은 잘 지는 것이겠지요.

세계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읊조립니다.

당신이 보낸 편지 속에 가득한 혁명을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세계를 꿈꾸는 당신에게 답장을 합니다.

모쪼록 건강하세요.

나도 당신처럼 시를 섬기며 살겠습니다.

그러니 걱정마세요.

부끄럽지 않게 봄을 보낼 겁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다음 계절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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