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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Oct 26. 2021

매운 떡볶이의 자리를 비워놓기

1일 1드로잉, 마음챙김

#102일차

*2021.10.26. 10분 글쓰기*

기분 전환하는 나만의 방법


기분전환이 필요해지면 나는 매운 음식을 먹는다. 매운 낙지, 매운 주꾸미, 매운 돈가스, 매운 짬뽕으로 유명한 음식점에 가려고 근교 외곽으로 나가는 일도 있다. 멀리 나갈 수 없을 때는 혼자 먹기 편한 매운 떡볶이를 찾는다. 집에서 만들어 보면 보통의 고춧가루로 매운 떡볶이집 수준의 매운맛을 구현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매운 것 좀 먹어 봤다 하는 맵부심(매운맛에 대한 자부심) 있는 사람이라면 캡사이신 한 병쯤 사본 적 있을 것이다. 매운 고추장, 청양 고춧가루, 베트남 땡초로 만족이 안되면 최종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매운맛의 종착지를 의미하는 식재료다. 시커먼 캡사이신 액기스 몇 방울 떨어뜨리면 순한 달걀찜도 극강의 매운 음식으로 돌변한다.


고통을 찾아 헤매는 변태처럼 매운 맛으로 명성이 자자한 떡볶이집을 성지 순례하듯 찾아다녔다. 지방에 내려갈 일 있으면 그곳의 유명한 떡볶이집이나 매운 음식점을 메모했다가 비어있는 시간에 들렀다. 도장깨기 하러 다니는 재야의 고수처럼 '대체 얼마나 맵길래 이 야단인가' 하는 마음으로 호기롭게 떡볶이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나는 아직 하수에 불과하구나 하며 초라해진 맵부심을 접으며 나온 적도 있었다. 음식점이 유명해지면 밟는 수순처럼 이제는 매운 떡볶이도 프랜차이즈화 되었다. 집에서 배달 앱으로 떡볶이를 넉넉하게 주문해 포장된 그대로 냉동실에 차곡차곡 쌓아두면 아무때나 먹을 수 있다.


스트레스가 많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집으로 오는 동안 냉동실에 넣어둔 떡볶이 생각이 가득하다. 집에 도착해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씻은 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질끈 묶는다. 경건한 마음으로 냉동실에서 떡볶이 한 팩을 꺼내 냄비에 넣고 끓인다. 냄비 채 들고 TV 앞에 앉으면 뜨거움이 더해져 매운맛이 더 강력해진 떡볶이와 함께 고행이 시작된다. 뜨겁고 매운 떡볶이를 입에 넣은 이후 다른 생각은 모두 물러가고 오로지 이 고통을 견뎌야 한다는 의지만 타오른다. 혀가 갈라지는 것처럼 얼얼하고 땀이 줄줄 흐르고 콧물을 훌쩍인다. 미각과 통각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정신 못 차리는 동안 낮에 시달렸던 스트레스는 기억에서 사라진다.


매운 떡볶이로 저녁을 해결한 다음 날 아침이면 퉁퉁 부은 내 얼굴이 기다린다. 양손바닥으로 볼을 찰싹찰싹 때리다보면 잊었던 스트레스가 돌아오고 붓기라는 근심까지 더해진다. 대체 왜 고통을 반복해서 자처하는지 생각해 본 적 있다. 매운 자극에 빠져 있는 동안 생각이 단순해지고 주의집중이 지금 이 순간에 모아지는 경험을 했다. 롤러코스터를 타거나 번지점프를 하는 것처럼 평범하지 않은 일을 수행하는 동안 머리를 가득 채웠던 근심과 무수한 생각에서 잠시 놓여나게 되는 것이다. 과거 MTB를 타고 마라톤을 했던 이유 중 하나도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지금 여기에 현존하는 몰입의 순간을 느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내성이 생겨 더욱 심한 자극이 아니면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운동을 안 하면 불안해져서 운동시간을 확보하려고 사람 만나는 약속을 피했다. 몸이 아파도 참고 운동하느라 무리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이제는 일상의 늪을 빠져나오기 위해 자극을 찾는 대신 마음챙김을 하며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마음챙김 수행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 마음의 짐을 굴려 눈덩이처럼 커지게 만드는 어리석음의 족쇄를 풀 수 있다. 번잡한 일상의 스트레스와 인간관계에서 얻는 상처에서 자유롭게 해방될 수 있다. 하루에 3분만 해봐도 마음챙김의 긍정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 유발하라리는 아침 저녁으로 1시간씩 마음챙김을 한다고 들었다. 매일 1시간씩 하루 두번 마음챙김을 하면 나도 <사피엔스> 같은 책을 쓸 수 있을까?  


작년에 아이들과 마음챙김을 함께 하며 바람직한 결과를 얻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등교가 들쑥날쑥해지며 아이들은 마음이 불안했고 감염의 공포와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외로움으로 힘들었다. 바깥 외출이 자유롭지 못해 집에 머물면서 청소년의 모바일 게임 이용량과 성 관련 사이트 접속량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자극의 홍수에 허우적대는 아이들에게 욕구의 고삐를 쥐고 마음을 가볍게 전환하는 길을 안내해주고 싶었다. 아침마다 등교하는 날에는 교실에서, 원격 수업하는 날에는 줌에서 마음챙김을 하고 간단하게 소감을 나누며 하루를 열었다. 아이들은 마음이 편안해지고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학습부진 학생에게 마음챙김을 실시한 결과 학생의 집중력이 향상되고 불안을 낮춰 학업성취도가 올라갔다는 연구도 나왔다.


매일 아침에 명상 앱을 이용해 마인드풀니스를 하고 잠이 안 오는 밤에는 바디스캔을 하며 마음챙김을 실천하고 있다. 출근 전에 하느라 시간에 쫓기는 마음이 있어 마음챙김에 집중이 잘 안되는 일이 많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마음챙김 시간을 점점 늘려가는 목표를 갖고 있다. 올해와 내년에는 마음챙김에 관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서 학교 현장에 체계적으로 적용해볼 계획이다.


오늘 드로잉은 수자타<관-명상을 통하여 얻어지는 자유> 책에 나오는 한 페이지를 따라 그렸다. 무려 1986년에 나온 책이다. 아이들이 졸라맨이라고 부르는 그림체와 글로 마음챙김의 매력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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