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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Oct 27. 2021

인생의 위기가 주는 선물

1일 1드로잉, 무심코

#103일차

*2021.10.27. 10분 글쓰기*


내 인생의 위기와 의미


다섯 남매가 모두 떠난 집이 헛헛했던 엄마는 텅 빈 마음을 물건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짐이 장롱과 천장 사이, 침대 아래 틈에 채워질 때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하나 둘 늘어나던 상자와 보따리가 택배 상자처럼 켜켜이 쌓여 장롱 문을 막았다. 사방 벽이 두터워지며 사람이 앉을자리는 점점 가운데로 밀려났다. 안방은 허리 아픈 엄마를 위한 싱글 침대 한 개 겨우 놓고 아빠는 그 옆 바닥에서 주무시는 상황이 되었다. 그나마 침대도 허물어지는 짐의 잔해가 침대 머리맡까지 침범해 들어오는 형국이었다. 남동생이 결혼해 나오면서 작은 방이 남았지만 짐이 가득 든 창고가 되어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짐의 대부분은 엄마가 오랫동안 모아 온 이불, 옷, 그릇 같은 것들이다. 장롱 안에는 50여 년 전 외할머니가 엄마 시집올 때 해준 혼수이불도 있다. 물건이 분류되어 정리된 게 아니고 구입한 순서대로 쌓여 있으므로 원하는 물건을 찾을 수 없다. 엄마는 수영복, 물안경을 여러 개 사놨지만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해서 결국 새것을 구입하셨다. 엄마가 찾고 싶은 물건이 대략 어디쯤 있는지 생각나도 문제였다. 보따리 동굴과 터널을 파고들어 긴가민가 하는 몇 개의 보따리를 헤집어야 하므로 지레 포기하셨다.  


아무리 좋은 물건도 필요할 때 그 자리에 없으면 도움이 안 된다. 정리되지 않은 물건, 지금 사용하지 못하는 물건은 구실을 하지 못하므로 내 삶의 영역에서 거둬내는 것이 맞다. 부모님에게 무관심한 자식들이 아니므로 서로 순번을 정해 찾아가서 함께 정리해보자고 설득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불에 데어 상처 난 곳을 건드린 것처럼 강하게 거부하셨다. 싱크대 교체 공사를 하기 전 싱크대와 바닥 사이에 가득 들어찬 그릇 더미를 꺼내는 일을 도운 적이 있다. 머리를 바닥에 붙이고 팔을 뻗어 그릇 묶음을 아무리 꺼내도 끝이 보이지 않아서 한 소리 했다. 엄마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모으고 쌓아서 보관해온 수고도 내 노력인데 왜 알아주지 않고 버리라고 쉽게 말하냐며 억울해하셨다. 이제부터 내놓고 쓸 거라고 하셔서 이참에 지금 쓰고 있는 헌 그릇을 찬장에서 꺼내 버리려고 하니 아직 쓸만하다며 나를 말리셨다.  


아버지가 응급실에 계시는 동안 셋째 언니는 결심이 섰다. 아버지의 여생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드리려면 엄마의 짐 문제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드디어 엄마의 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아버지를 간병인에게 맡기고 나온 언니와 엄마 사이의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울었다 웃었다 화냈다 소리쳤다 눈물을 흘리고 사과하고 다시 정리하고.. 그렇게 방바닥이 조금씩 넓어졌다.


얼마 전 언니가 카톡방에 장롱문 사진을 보냈다. 그동안 가려져있던 장롱 문짝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드디어 장롱 문을 열 수 있게 되었네. 문이 제 역할을 찾았구나! 보따리 숲을 지나 거기까지 파고들어 간 언니의 집념이 대단했다. 동시에 소중히 간직해온 물건이 쓰레기봉투에 담겨 나가는 걸 보며 괴로웠을 엄마의 마음이 짐작되어 걱정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셋째 언니와 엄마는 지금 냉전 중이다. 어제 언니에게 전화했더니 목소리가 시무룩하다. 아빠가 다리 뻗고 누울 침대를 놓아드리려고 먼 걸음 달려와 고생한 언니는 지쳐있었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애지중지한 물건이 버려져 속상했을 테지만 그 일과 별개로 셋째 언니의 마음을 이해해줄 수 있지 않냐고 이야기했다. 마음이란 속성은 넓고 깊어서 마음만 먹으면 속상한 엄마 마음과 언니 입장은 병립 가능하다.


인생의 위기를 겪으며 남편과 나의 사이는 어느 때보다 돈독해졌다. 리베카 솔닛이 말한 재난 유토피아가 우리 가정에도 펼쳐진 것이다. 재난 유토피아는 공동체가 재난을 맞이하면 극복하기 위해 이전보다 단단히 결속하고 서로를 돌본다는 의미다. 고베 대지진, 9.11 테러 사건, 태안 기름유출 사고 때 단결했던 시민의식이나 봉사자들의 헌신이 그렇다. 어리석고 유치했던 우리는 고통을 통해 현명함을 얻은 것 같다. 예전에는 자주 싸웠고 싸운 다음에도 분함으로 파르르 떨며 잔불이 꺼지는데 오래 걸렸다. 고통을 겪고 나면 삶의 기준이 바뀐다. 귀하다 여긴 것은 부질없고 가치를 몰랐던 것이 더없이 소중해지는 것이다.


거실에서 줌 회의를 하던 주말 저녁이었다. 며칠 전부터 남편이 꼭 봐야 한다고 별렀던 TV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는지 몰랐다. 이어폰을 끼어도 내가 말해야 되는 상황이 생겨서 집중하는데 방해되었던 모양이다. 예정된 종료 시간을 훌쩍 넘기고 회의가 끝날 줄 모르자 남편이 문을 쾅 닫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문소리를 듣고서야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나는 회의를 마치자마자 남편에게 갔다. 서로의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생겨도 거기서 끝내자, 싸웠던 감정에 마음을 빼앗기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고 덤덤하게 말했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앙금을 남겨서 현재를 망치지 말자는 말을 나눴다. 힘든 일을 겪고 나니까 "뭣이 중한데?" 영화 <곡성>의 유행어가 절로 이해되었다.


아픔을 겪고 나면 사물이 투명해져 보인다. 좀 과장하면 엑스레이 사진처럼 그 안에 담긴 뼈가 보이는 느낌이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비본질적인 것인지 구별하는 지혜가 생긴다. <무심코> 시 안에 살고 있는 부부처럼 명이나물 들어 올리면 젓가락이 따라와서 잡아주는 고마움으로, 싸운 다음 날 쑥스럽게 머리 긁으며 영화나 한 편 볼까? 내미는 손의 따스함으로 인생이 살만하다고 미소 짓게 된다.  



무심코


-복효근



서먹하니 마주한 식탁

명이나물 한 잎 젓가락으로 집어 드는데

끝이 붙어 있어 또 한 잎이 따라온다

아내의 젓가락이 다가와 떼어준다

저도 무심코 그리했겠지

싸운 것도 잊고

나도 무심코 훈훈해져서

밥 먹고 영화나 한 편 볼까 말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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