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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Oct 30. 2021

단풍 단상

1일 1드로잉, 분노

#105일차

*2021.10.30. 10분 글쓰기*

(내가 다녀온/다녀올 최고의 단풍여행) 이번 주말 단풍 여행지 추천해주세요.


단풍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선 적이 없는 나는 주말에 단풍객으로 도로가 막힌다는 뉴스를 보면 "와, 나와 다른 사람들이 많구나" 싶다. 좋은 경치를 보러 산에 가는 사람들 가운데 5,60대가 많은 걸 보면 궁금하다. 원래부터 자연을 좋아했는지 나이가 들면서 좋아진 건지. 궁금증은 트로트를 좋아하는 어르신에게 이어진다. 어렸을 때부터 트로트를 듣고 자라서 지금도 즐겨 듣는 걸까? 아니면 나이가 들어 취향이 바뀐 걸까? 나도 나이가 들면 트로트가 좋아질까? 10~20대 때 들었던 음악 취향이 평생 간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랩을 좋아하는 10대 청소년은 노인이 되어도 랩을 좋아할까? 아직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눈이 안 생긴 건지 앞으로도 단풍을 볼 계획 같은 건 세우지 않을지 모르겠다. 비슷한 취향끼리 친해져서 그런지 현재는 단풍 보러 가자고 부추기는 지인도 없다.


지난 체육시간이었다. 스펀지 야구공을 던지고 받는 연습을 할 때 자기 차례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바깥을 구경하고 있었다. 2층 체육관 유리문을 통해 가을볕을 받고 있는 키 큰 나무의 머리가 보였다. 아이들은 나뭇잎 색깔이 한 풀 꺾인 것처럼 달라졌다고 했다. 나뭇잎의 기울어진 빛깔을 보면 인생에서 사분의 삼 구간의 끝에 다다른 사람이 연상된다. 열한 살 아이가 단풍을 보며 신기해하니까 문득 아이들이 나를 보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 알고 싶어졌다. 나무의 삶으로 보면 나는 어느 지점에 서 있는 것일까. 아이들은 부모님이나 선생님을 보며 자신이 어른이 된 모습을 그려본다. 아이들에게 세상이 살만하고 신념을 지키면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내 삶으로 보여주고 싶다.


집 근처 현충원을 걷다가 불타오르는 단풍을 봤다. 화려한 절정의 순간을 대면하면 다가올 종말이 보이는 것 같아 슬프다. 무엇을 단단히 쥐어본 적 없는데 버려야 되는 시간이 오면 분하고 답답할 것 같다. 단풍으로 물들고 낙엽이 되어 나무를 떠나야 하는 시간에 당도해 억울한 마음 없이 쓸쓸한 뒷모습을 남기지 않고 싶다. 그때 미련 없이 돌아설 수 있도록 지금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위해 헌신하고 힘껏 일하고 싶다.  


독일 나치에 맞선 레지스탕스로 젊은 날을 보냈던 93세의 노인이 2009년에 한 연례모임에서 프랑스 청년들을 향해 분노하라고 소리쳤다.


"이른바 '불법체류자'들을 차별하는 사회. 이민자들을 의심하고 추방하는 사회, 퇴직연금제도와 사회보장제도의 기존 성과를 새삼 문제 삼는 사회, 언론매체가 부자들에게 장악된 사회, 결코 이런 사회가 되지 않도록, 만일 우리가 전국 레지스탕스 평의회의 진정한 후예였다면, 이런 모든 일들에 암묵적인 찬동자가 되기를 단연코 거부했으련만."


2차 대전이 끝나고 외교관, 정치인으로 일했던 스테판 에셀은 무관심이 최악의 태도라고 외치며 모든 사람이 분노의 동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도 독립운동가들이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자본의 노예가 된 신자유주의 사회에 쓴소리를 해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제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쪽방촌에서 가난과 싸우며 사는 지금에 이르러 초등학생의 장래희망 1위가 건물주가 된 건 우연이 아니다.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기 바란다. 이건 소중한 일이다. 내가 나치즘에 분노했듯이 여러분이 뭔가에 분노한다면, 그때 우리는 힘 있는 투사, 참여하는 투사가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며,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은 우리들 각자의 노력에 힘입어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이 강물은 더 큰 정의, 더 큰 자유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나는 무엇에 분노하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선생님들의 무사안일한 태도와 매너리즘에 분노하고 개별 사람을 미워하는데 에너지를 소모했다. 단풍을 보며 무기력한 학교 사회의 구조와 환경을 바꾸는 일에 노력하지 않고 개인의 능력과 태도를 문제 삼았던 걸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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