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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B Sep 12. 2021

아빠는 먹지 않은 돈가스

아빠도 나도 나이를 먹고


내 본가는 서울에서 자가용으로 2시간 정도 걸리는 강원도 철원군이다. 하지만 나는 운전을 하지 못한다. 본가에 대중교통으로 가야 한다. 수유에서 철원까지 직통버스가 없어진 이후, 더 번거로워졌다. 전철을 10분 타고, 버스로 갈아타서 1시간 20분을 가고, 또 다른 버스로 갈아타서 1시간 10분, 터미널에 내려서 10여분을 걸어가야 한다. 바로바로 갈아탄다고 해도 3시간 10분이 걸린다. 그런 내가 한 달에 한 번씩 본가에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이유는, '아빠'다. 아빠가 서울 집 앞 까지 데리러 오시고, 다시 데려다주신다. 내가 예전에 의정부에 살 때는 아빠가 내 집을 옆집처럼 오시더니, 서울에는 옆 동네처럼 오신다. 주변에서 본가에 어떻게 가느냐고 물을 때, 매번 아빠가 오신다고 말하면 다들 놀란다.


'우리 아빠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데.'


고등학교 때는 야자가 끝날 때마다 학교 앞으로 거의 매일 데리러 오셨다. 가끔 아빠가 술을 드신 날에만 엄마와 함께 걸어서 집에 갔다. 대학생 때는 대학교와 본가의 거리가 차로 편도 3시간 정도였다. 다른 친구들이 기숙사 짐을 택배로 붙일 때 난 아빠가 오셨다. 기숙사에 살던 4년 내내 매 학기가 개강하고 종강할 때마다 짐을 풀고 싸기를 반복했다. 4년 동안 8학기, 총 16번의 이동 중 나는 단 한 번도 택배를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언제 한 번은 수업 시간 때문에 나를 만나지 못하는데도, 아빠가 내가 쓸 노트북만 기숙사에 놓고 간 적도 있었다. 그때 아빠는 나 대신 내 친구만 만나고 갔었다.


아빠는 내게만 그러는 게 아니라, 언니들에게도 똑같다. 엄마의 김장 김치를 전해주러, 결혼한 언니의 살림집이 있는 경기도 광명시까지도 간다. 그 거리도 편도 3시간 정도 일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아빠가 소위 딸바보로 다정하고 가정적인 사람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아빠는 밖으로 돌고 엄마는 독박 육아에 시집살이를 겪었다. 엄마 말로는 우는 아이 한번 안아서 달래지 않았다고 했다. 집에 가족들 먹으라고 먼저 먹을 거 하나 사 오지 않았다. 아내와 딸들에게 다정한 말을 할 줄도 몰랐다. 우리 아빠는 가부장적인 옛날 아빠 스타일에 가까웠다. 그런 아빠의 유일한 애정 표현이 운전이었던 것 같다. 우리 집 여자들이 모두 운전을 잘 못해서, 아빠가 가장 잘해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런데 과거형이냐면, 아빠가 변했다. 짐작하는 시점은 첫 손주가 태어났을 약 8년 전 무렵이다. 아빠가 아기를 앉아주는 모습을 처음 봤다. 그것도 매우 인자한 얼굴로 즐거워 보였다. 아빠가 혼자 마트에 가서 아기 장난감을 사 왔다. 우리 가족은 아빠에게 티를 내지 않았지만, 모두 놀랐다.


'우리 아빠도 나이를 먹었구나.'


발을 다친 이후, 걸음걸이도 예전같이 않아졌다. 몇 년이 지나긴 했지만, 뒤에서 보면 미세하게 다르다. 아빠가 집에 들어오면 바닥이 울릴 만큼 큰 소리가 났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예전에는 안 먹던 빵이나 과자 같은 간식도 드신다. 엄마랑 비슷한 TV 프로그램을 볼 때도 있다.


본가에서 서울로 오는 길에 언제 한 번은 아빠가 집에 가서 먹으라고 드라이브 쓰루에서 햄버거 세트를 사줬다. 나는 차마 여기서 사가면 식은 걸 먹지만, 서울 가서 시켜먹으면 따뜻한 걸 바로 먹을 수 있다는 말은 못 했다. 고맙게 받아와 집에서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먹었다.


근래 더 달라진 점이, 서울에서 아빠 차를 타고 본가에 가는 길에, 아빠가 먼저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사서 들어가자고 먼저 묻는다. 처음에는 생각지 못한 질문에 당황했다.


"집에 가서 밥 먹으면 되는데..."


말 끝을 흐려버렸다. '아차!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데.'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려서 음식을 생각해냈다. 혼자 먹기는 힘들지만 가족들과 먹기에는 좋은 '수박'. 그날 아빠는 본가에 무거운 수박을 들고 들어갔다.




내가 아빠에게 먼저 말을 꺼내 부탁했던 일이 있었다. 작년 가을부터 겨울까지,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아서, 한동안 대학병원을 다녔다. 최종적으로 문제없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그전까지 끝없이 검사를 해야 했다. 그중에서 한나절 정도 입원을 해서 받는 검사 하나가 있었다. 서울에 혼자 살고 있으니 계속 혼자 병원을 다녔지만, 입원을 하기 위해서는 보호자가 있어야 했다.


오전 9시까지 병원에 가기 위해서 아빠가 내 서울 집에 왔다. 아빠랑 병원을 돌아다니는 게 어색했다. 내가 접수를 하고, 설명을 듣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 아빠는 그저 멀찍이 서있었다. 그런 아빠를 보며 검사를 하러 침대를 타고 이동했다. 내가 멀어지는데도 아빠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아빠가 시야에서 점점 작아졌다.


검사실에서 수면마취를 하고, 눈을 뜨니 다시 이동 전 대기실이었고 바로 옆에 아빠가 있었다. 아빠는 내가 검사를 받고, 돌아와서 깨기 전까지 혼자 뭐 하고 있었을까?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줄도 모르는 시골 할아버지가, TV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처음 와 본 곳에서.


퇴원을 하고 아빠 차로 다시 서울 집으로 향했다. 오후 2시가 다 되어갔다. 아빠가 집 근처에서 차를 세우고, 돈가스 집에서 점심을 사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당연히 아빠랑 같이 먹을 줄 알았는데, 아빠는 집에 가서 먹겠다고 내 것만 포장하라고 했다. 아빠는 집 앞에 나를 내려주고, 지체 없이 바로 돌아갔다. 아빠가 아침에 이른 시간까지 오기 위해서 일찍 밥을 먹고, 새벽 6시 반에는 출발을 했겠지. 그렇게 서둘러서 왔을 아빠가 같이 점심도 먹지 않고 돌아갔다. 내 돈가스만 사주고 꼭꼭 씹어먹으라는 말만 남긴 채 떠나는 뒷모습을 보니, 마음이 찌르르했다.


최근에 먹은 포장 돈가스


나는 집에 들어가서 포장을 풀었다. 검은 플라스틱에 몇 가지 밑반찬과 샐러드가 같이 담겨 있었다. 검사 때문에 금식을 해서, 매우 배고픈 상태였다. 아빠가 분명히 꼭꼭 씹어 먹으라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허겁지겁 먹었다. 양이 꽤나 많았는데도 얼마 남기지 않았다. 배가 부르니까 찌르르했던 마음이 조금 몽글몽글해졌다.




아빠 차를 타고 본가에 가면서 카톡을 하는 중에, 한 친구가 물었다.


"아빠랑 무슨 얘기해? 나는 아빠랑 할 말이 너무 없더라."


예전의 아빠, 예전의 나라면 나도 정말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빠도 나도 나이를 먹었다. 아빠는 나이를 먹고 말이 늘었고,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말이 늘었다. 가는 2시간 내내 계속 얘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회사 얘기도 하고, 언니들과 조카 얘기, 아빠 일 얘기도 두런두런 나눈다. 아빠랑 친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단 둘이 있는 게 어색하지는 않다. 이제는 아빠가 내 생일에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한 달이나 먼저 얘기해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날 아빠는 왜 같이 돈가스를 먹고 가지 않았을까? 아침을 일찍 먹어서 더 배고팠을 텐데. 돈가스가 먹고 싶지 않았을까. 바쁜 일이 있었을까. 아니면 아빠가 얼른 떠나야 내가 혼자 편하게 쉴 거라고 생각한 걸까. 아직도 아빠를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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