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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B Sep 26. 2021

컵라면에 김밥 한 줄의 만찬

편의점을 내 집처럼


내게 누가 공짜여도 잘 안 먹는 음식이 '라면'이다. 기름기가 많고 쫀득하지 않은 면의 식감이 싫고, 나트륨만 가득한 국물 맛도 싫다. 특유의 라면의 냄새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과거의 나는 라면 한 봉지를 끓여서 다 먹고 밥까지 말아먹었다. 빨간 국물, 하얀 국물은 물론 매콤한 볶음 라면류까지 좋아했다.


딱 대학생 때 까지였다.


나는 대학 4년 내내 기숙사 생활을 했다. 신관과 구관으로 나뉘고 거기서 또 남자동과 여자동이 나뉘었다. 구관은 4층짜리 오래된 건물로 시설이 매우 낡고, 방이 조금 작았으며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신관은 8층짜리 건물로 시설이 깨끗하고, 방이 더 넓었으며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1실 3인으로구관은 한 층이 한 개의 거실과 공동욕실과 화장실을 공유했고, 신관은 3개의 방이 한 개의 거실과 두 개의 1인 욕실과 화장실을 공유했다. 예상대로 학생들은 구관을 기피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2010~13년의 기준으로 기숙사비는 구관은 60만 원대, 신관은 70만 원 대였다. 기숙사에는 소형 편의점 같은 작은 매점이 딸려있고, 택배를 보관해주기도 했다. 기숙사 식당도 있는데 기숙사비에 몇십 개의 식사권이 포함되어 있었다. 식당의 음식을 맛없어하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나는 가격 대비 맛있다고 생각해서 잘 먹었다. 어릴 때부터 아침을 챙겨 먹는 편이었어서, 기숙사 밥으로 아침식사를 잘 먹었다. 


학생 때는 안타깝게도 배는 계속 고프지만 돈은 계속 없었다. 매달 아빠에게 약간의 용돈을 받았다. 가끔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고, 친언니들에게 용돈을 받을 때도 있었다. 기숙사에 사는 데다가, 옷을 많이 사지도 않았는데 돈이 부족했다. 나는 적극적으로 돈을 버는 대신, 절약을 선택했다. 그러다 보니 영양가와 질보다는 가성비 있는 음식을 찾기 마련이었다. 기숙사 밥 정도면 영양가가 떨어지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먹다 보면 질리고 자극적이지 않은 맛이라 심심했다. 그래서 친구들과 자주 가던 곳이 '편의점'이었다. 그때는 학교 앞 편의점이 이마트고 홈플러스였다. 오후 강의 전, 점심시간에 빠르고 간단하게 식사를 하기에도 좋았다. 물론 시간이 여유로운 저녁에도, 밤에도 갔다. 


가장 많이 먹었던 음식은 '컵라면에 김밥'이었다. 배가 많이 고프거나 돈이 여유가 있을 때는 큰 컵라면에 김밥 한 줄을 골랐다. 배가 덜 고프거나 돈이 바닥일 때는 조금 더 저렴한 작은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기도 했다. 돈이 바닥이 아니지만 긴축정책이 필요할 때는 큰 컵라면에 삼각김밥이 제격이었다. 라면과 김밥을 먹으면, 밥과 반찬에 면과 국까지 한 번에 먹을 수 있다. 탄수화물에 치중되어 있긴 하지만, 고기가 들어간 김밥을 먹을 땐 좀 낫다. 혼자 바로 먹어야 할 땐, 편의점 내 스텐딩 테이블에서 서서 먹었고, 친구들과 함께 할 때는 야외 테이블이나 기숙사에 가져가서 먹었다. 라면 한 젓가락에 김밥 한 입, 그다음에는 국물 마시기를 반복하면서, 깔끔하게 해치웠다. 가장 싸게 배부를 수 있었다. 


대학 4년 동안 컵라면과 김밥을 정말 질리게 먹었다. 분명 김밥도 많이 먹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다시 좋아졌다. 하지만 라면은 완전히 질려버렸다. 그 강한 향과 자극적인 맛이 계속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머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면서, 라면도 함께 졸업했다. 




퇴근 후,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 마트 바구니 안에 필요한 걸 넣으며 돌아다니다가 라면 코너 앞을 지났다. 


마트 라면 코너


색색깔의 라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처음 보는 특이한 라면들이 많았다. 문득 라면을 먹은 지가 굉장히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앞에서 한참 이런저런 라면을 들여다봤다. 옛날에 인기가 많았던 '오징어 짬뽕, 참깨라면, 불닭볶음면'을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났다. 


'지금도 맛있을까?'


그러다 내가 고른 건 기본 라면 중 하나인 신라면이었다. 큰 컵은 너무 많아서 작은 컵으로 샀다. 사놓고도 크게 끌리지 않아서 바로 먹지는 않았다. 며칠 있다가 집에 먹을 게 떨어진 후에야, 불에 물을 올렸다. 물이 보글보글 끓고, 라면에 물을 부었다. 라면 수프 냄새가 진해졌다. 


물을 붓고 3분의 기다림. 그때는 3분도 기다리기가 힘들었다. 잠깐 핸드폰을 들여다보면 금방 지나가는 시간인데 말이다. 



시간이 지나고, 젓가락을 내려서 컵라면 뚜껑을 열었다. 열기가 확 올라오면서 안경에 김이 서렸다. 내 돈 주고 사 먹는 라면이라니, 이게 얼마만인지. 


한 젓가락만 먹고 안 먹게 될 줄 알았는데, 웬걸? 다 먹었다. 맛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국물도 모금 마셨다. 집에서 집밥을 주로 먹다가, 그렇게 힘 있게 자극적인 맛은 오랜만이었다.


'이제는 라면이 별식이 되었다니.'


정말 나는 예전과 다르게 살고 있었다. 코 앞의 주말만을 기다리면서 살다 보면, 내 인생의 시간이 흐른다는 걸 체감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다가 이렇게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크게 느끼게 될 때, 세월을 한 번에 만난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고, 살고 있구나. 나이를 먹은 만큼 나는 어른이 되었나?'


그저 시간만 흐르고 몸만 나이가 들은 것 같다. 고작 작은 컵라면 한 개에 세월을 느끼며 나에 대한 성찰까지 해버렸다. 무슨 청승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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