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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B Sep 08. 2021

곱창처럼 구불구불한 우리

쫄깃하고 맛깔나게


"돼지 똥 지나간 걸 왜 먹냐?"


이렇게 말하면 사실 할말은 없다. 뒤늦게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맛있다고 말할 수밖에. 소나 돼지의 작은 창자인 곱창은, 닭발처럼 그 정체와 생김새, 식감 때문에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불호의 경우에는 동물의 창자라는 사실 자체에 찝찝해하거나, 창자가 잘린 생김새를 불쾌해하거나, 혹은 곱이 나오는 질깃한 식감을 싫어한다. 음식 솜씨가 떨어지는 가게에서 먹으면 냄새가 난다고도 한다.


나는 곱창을 아주 좋아한다. 쫄깃쫄깃하고 특유의 감칠맛이 있다. 물론 나도 처음에 곱창을 보았을 때는 정체와 생김새에 조금 놀랐다. 하지만 막상 먹어보니 걱정과 달리 입에 맞았다. 다양한 곱창 요리 중에서 특히 좋아하는 건 순대와 함께 매콤하게 볶은 순대곱창이다. 


친하게 지내는 동호회 사람들과 곱창볶음을 먹으러 자주 가던 곳이 있다. 한 분이 가족들과 함께 어릴 때부터 먹던 단골집이라고 소개해준 가게인데, 종로 시장 안에서 오래된 곳이다. 낡은 간판에는 2대째 이어온 40년 맛집이라고 쓰여있다. 야외 테이블까지 합쳐도 테이블 수가 여남은 개 되지 않을 만큼 아담하다. 테이블은 흠집이 많이 난 원형의 은색 테이블이다. 주방은 문 앞쪽 야외에 노출되어있다. 추운 날이 아니면 항상 출입문이 활짝 열려있다. 갈 때마다 주인 부부 아저씨와 아주머니께서 밝게 웃으면서 맞아주셨다. 함께 쌓아온 시간을 보여주듯, 두 분의 웃는 모습이 참으로 닮았다. 


메뉴에는 막창, 부속품 구이도 있지만, 주로 곱창볶음을 인원수에 맞춰서 시켰다. 야채곱창이면 야채와 곱창만 들어가고, 순대 곱창에는 야채곱창에 순대까지, 모둠 곱창에는 막창이랑 껍데기까지 들어간다. 두 분이 철판 위에 양배추, 깻잎, 당면 등을 듬뿍 넣고 곱창을 볶아서 금세 가져다주셨다. 다 되어 나오기 때문에, 불을 줄이고 바로 먹으면 된다. 

철판 위의 음식은 뭐든지 더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양도 많다. 이곳에서 먹다가, 다른 가게에서 먹으면 양이 적어서 놀란다. 조용히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된다.


철판 모둠 곱창 볶음


적당히 매콤하며 쫄깃하고 감칠맛이 강하다. 여러 가지 재료를 쏙쏙- 집어먹는 재미도 있다. 곱창볶음에는 역시 소주,라고 하고 싶지만 마음과 달리 소주는 잘 마시지 못한다. 주로 맥주나 청하를 마셨다. 곱창을 다 먹으면 볶음밥까지 시켜서, 배가 터질 듯이 먹었다. 


서로 곱창처럼 구불구불하게 사는 이야기를 꺼냈다. 고르게 나누어서, 꼭꼭 씹어 삼켰다. 가끔 이야기가 질기거나 냄새가 나도, 뒷맛이 써도, 웃으면서 천천히 소화시켰다. 식당에는 매번 사람들이 많았다. 생김새도 나이도 사는 곳도 다르지만, 그 사람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누었겠지. 함께 먹고, 말하기를 반복하면서. 


배달 순대곱창 볶음


한 동안 가게를 가지 못해서, 집에서 배달로 곱창을 시켜먹어 봤다. 들깨사 듬뿍 들어간 데다, 양도 많고 매콤해서 맛있었다. 함께 오는 양념을 찍어먹으면 더 자극적이었다.


나의 신조 중 하나가 '맛있는 음식은 혼자 먹어도 맛있다!'이다. 그래서 혼자 조용히 음식을 음미하는 시간을 즐길 때가 많다. 하지만 곱창만큼은 조금 다르다. 내게 곱창은 같이 먹었을 때 제일 맛있는 음식이다. 음식을 어떻게 먹어왔는지에 따라서 그 음식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는 것 같다. 생곱창을 사다가 집에서 냄새 안 나고 맛있게 곱창요리를 해 먹기란 쉽지 않다. 주로 외식 메뉴였다. 밖에서 자주 먹으니 집에서 시켜먹을 일도 별로 없었다. 


요새는 왁자지껄 모일 여건이 되지 않아서 함께 모여 곱창을 먹은 지 오래됐다. 소수 혹은 혼자의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까, 적응이 돼서 별로 답답하진 않다. 하지만 아쉬움은 계속 남는다.  


얼마 전 단골 곱창 가게에 다녀온 분이 걱정스러워하며 말했다. 


"예전과 달리 사람들이 너무 없더라. 거기도 다른 데처럼 문 닫으면 안 되는데."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해서, 구불구불한 인생이 갑자기 곧게 뻗을 리는 없을 텐데. 곱창을 먹으면서 쌓인 것들을 털어놓던 사람들은 지금 다 뭐 하고 있을까. 켜켜이 쌓지 말고, 혼자서라도 쫄깃하고 맛깔나게 먹으면서 훌훌 털어버릴 수 있길. 


그들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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