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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B Aug 22. 2021

풀 혐오자가 샐러드 러버가 된 이유

풀떼기도 맛있네


나는 분명히 풀 혐오자였다.


"돈 주고, 샐러드 같은 풀떼기를 왜 먹어?"


그것도 아주 강경한 육식주의자로서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고기가 메인인 자극적인 음식에만 길들여져 있었다. 고기 요리도 백숙 같이 양념이 세지 않은 건 싫어했다. 그러니 샐러드는 무(無) 맛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주식으로 비싼 샐러드를 사 먹고, 배달도 시켜먹고, 그것도 모자라서 심지어 집에서 만들어먹기까지 한다. 샐러드를 정말 좋아하는 샐러드 러버가 되었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변했을까?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2018년도쯤인 것 같다. 지인과 대학로에서 공연을 보기로 한 날이었다. 퇴근 후, 바쁘게 전철을 타고 만나기로 한 식당으로 갔다. 역에서 한참 걸어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그곳은 내 인생 첫 샐러드 전문점이었다.


'겨우 샐러드를 먹으려고 굳이 여기까지 와야 하는 걸까?'


조용히 속으로 생각했다. 주메뉴는 샐러드와 샌드위치가 다였다. 반가운 메뉴는 아니었지만, 지인이 추천하는 곳이라서 먹어보기로 했다. 나는 대표 메뉴라는 '목살 스테이크 샐러드'를 시켰다.


얼마 전 오랜만에 가본, 내 첫 샐러드 가게의 목살 스테이크 샐러드와 먹물 치아바타


잠시 후, 나온 샐러드는 놀랍게도 정말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싱그러운 초록빛 채소 위에 가지런히 놓인 목살 덩어리가 시선을 확 끌었다. 그릴에 양념하여 잘 구워진 듯 구릿빛 윤기가 반지르르했다. 그 외에도 노란 옥수수, 구멍이 송송 뚫린 올리브, 새빨간 방울토마토, 고소해 보이는 삶은 계란이 올려져 있었다. 발사믹 소스를 뿌리고, 포크로 고기와 야채를 한 번에 푹 찍어 먹어봤다. 새로운 맛이었다. 처음에는 샐러드 위의 토핑만 맛있는 줄 알았는데, 내가 느낀 새로운 맛의 근원은 고기와 야채, 소스가 함께 하는 완벽한 조화로움이었다. 내가 그간 먹어온, 맛과 영양이 한두 가지로 기울어져 있는 음식과 달랐다. 


"이렇게 샐러드가 맛있는 거였구나! 나는 왜 이걸 이제 알았을까?"


탄식과 함께, 샐러드 맛에 눈을 떴다. 이후, 다른 샐러드도 하나둘씩 먹기 시작했다. 접근성이 좋고 저렴한 편의점 샐러드부터, 브런치 구성에 함께 있는 샐러드나 메인 메뉴에 따라서 소량으로 따라 나오는 사이드 샐러드, 이탈리안 음식점에서 애피타이저로 나오는 샐러드까지. 다양하게 샐러드를 즐겨 먹는다. 언제 먹어도 속이 편하고, 소화가 잘 되고, 신선한 여러 재료를 골고루 먹을 수 있다.  


왼쪽부터 찹샐러드, 지중해식 샐러드, 토마토 모짜렐라 샐러드 (회사 주변 샐러드)


회사 주변의 많은 샐러드 집을 돌아다니며 점심 식사를 하고, 주말에는 집에서 배달을 시켜 먹기도 한다. 혹은 시간이 여유로울 때, 직접 샐러드를 만든다.


파스타 샐러드

두 가지를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파스타 샐러드.

예전에 어느 식당에서 먹었던 파스타 샐러드가 생각나서, 인터넷 레시피로 만들었다. 통밀 파스타면을 익혀서 식히고, 믹스 야채 위에 옥수수와 방울토마토, 체다치즈를 잘라 넣었다. 여러 시판 소스를 섞으니 정말 비슷한 맛이 났다. 이대로 먹어도 충분히 맛있지만, 부라타 치즈를 얹어서 색다르게 만들었다. 파스타와 샐러드를 함께 먹을 있어서 더욱 포만감이 컸다.


구운 닭가슴살 샐러드

기본 중에 기본인 구운 닭가슴살 샐러드.

냉동 닭가슴살을 올리브유에 은근하게 구웠다. 믹스 야채 위에, 리코타 치즈 한 스푼과 토스트를 올렸다. 탄단지 영양소가 꽉 찼다. 촉촉하게 구워진 닭가슴살에 부드러운 리코타 치즈를 살짝 얹어서, 아삭한 야채와 함께 먹으니, 오리엔탈 소스만으로도 충분히 맛있었다.


콥 샐러드

냉장고 털기에 좋은 콥 샐러드.

집에 있던 고구마, 감자, 오이, 크래미, 초당 옥수수, 삶은 계란에 닭가슴살까지 사용했다. 콥 샐러드는 냉장고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어떤 재료든 마음대로 사용하기에 좋다. 일명 '냉파(냉장고 파먹기)'에 딱이다. 재료들을 먹기 좋게 자르고, 그 위에 플레인 요거트를 베이스로 한 소스를 뿌렸다. 가장 색감이 예쁘고 먹기 편한 샐러드다.


샐러드를 여러 번 만들어보니, 야채만 싱싱하다면 생각보다 더 많은 재료들이 샐러드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이제는 샐러드를 사 먹을 때, 유심히 메뉴를 관찰한다. 어떤 야채를 쓰고, 어떤 재료를 어떻게 썼는지, 소스는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이 재료는 어느 소스와 조합이 좋은지. 그리고 내 다음 샐러드 요리를 정한다.


오늘도 나는 빛깔 좋은 채소들이 줄지어 누워있는 좌판 앞을 서성거린다.


"어떤 풀이 더 맛있으려나?"


이제 하다 하다 풀떼기까지 맛있다니, 이를 어쩌지? 코끼리가 풀만 먹고 4톤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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