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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B Aug 25. 2021

엄마들은 왜 그럴까?

조금? 조금!


"조금만 줘!"


엄마가 반찬을 싸줄 때마다 매번 똑같은 대화가 오간다. 엄마는 어떻게든 많이 주려고, 나는 어떻게든 조금 받아가려고 애쓴다.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걸. 그걸 누구 코에 붙이냐?"

"아니, 누구 입이 그렇게 커?"

"아휴, 그래 조금만 쌌다."


엄마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현관문 앞에 한 짐을 싸놓는다. 서울로 돌아와서 짐을 풀어보면 꽤나 많다. 엄마의 조금과 나의 조금은 언제나 다르다. 엄마의 조금은 내 조금의 최소 두 배다. 나는 한 번도 엄마에게 음식을 많이 달라고 한 적이 없다. 그랬다간 정말 큰일 날지도 모르니까.


나도 반찬을 조금만 달라고 하는 이유가 있다. 집에서 매일 세 끼 같은 반찬의 식사를 할 수는 없다. 배달을 시켜먹거나 요리를 해먹기도 한다. 당연히 출근해서 점심을 사 먹거나 약속이 있어서 외식을 하기도 한다. 집밥을 못 먹는 날이 계속되면, 시간이 지나서 반찬 맛이 변한다. 엄마는 반찬 아끼지 말고 먹다가, 변하면 그냥 버리라고 하지만, 딸 입장에서 그 건 마음이 불편하다. 엄마가 아침부터 바쁘게 열심히 만든 건데, 버리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아깝다. 그럴 바에는 적게 가져와서, 깨끗이 다 먹고, 내가 요리해서 먹는 게 낫다.


내가 집에 반찬이 남아있다고 말하면, 엄마는 분명히 꼽재기만큼 남아 있을 거라면서 귓등으로 흘려버린다. 그럼 대체 왜 물어본 거야? 내 말이 벽에 튕겨져서 돌아오는 느낌이다. 엄마에게 답은 정해져 있다. 무조건 여러 가지 많이 싸줄 것! 엄마는 어쨌든 밑반찬은 항상 있어야 하는 거란다. 


이런 얘기를 주변에 하면, 많은 공감이 쏟아진다.


'엄마들은 왜 그럴까?'


우리 엄마는 손이 너무 크다고, 음식을 한번 하면 한 냄비 가득이라고, 안 먹는다는데도 자꾸 준다고, 집 앞에 이미 택배가 와있다고, 냉장고가 비어있을 날이 없다고. 집집마다 내 얘기 같다. 참 신기하다. 분명히 다른 곳에서, 다른 걸 먹으면서, 다르게 사는데, 엄마들의 습관은 같은 사람 같다. 집집마다 엄마의 마음이 모양은 달라도, 맛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렇지 않은 엄마들도 있지만, 나의 엄마는 유난히도 그렇다. 더군다나 나의 엄마는 고슴도치다. 고슴도치가 자기 새끼한테 가시가 돋쳐있는데도 예쁘다고 안아준다더니. 엄마가 딱 그렇다. 엄마 딸들이 제일 착하고 예쁜 줄 안다. 우리 딸들 정도면 훌륭하다고

는 본가에 갈 때마다 매 끼니를 최후의 만찬처럼 거하게 먹고, 사이사이 간식까지 먹는다. 그런 후에 엄마가 주는 먹거리 보따리를 들고 온다. 몸과 양 손 모두 무겁다. 이런데도 엄마는 툭하면 생각하지 말고 밥 잘 챙겨 먹으란다. 그러다가 엄마 딸, 돼지가 되면 어떡하죠? 아마 그래도 우리 딸, 부둥부둥하다고 예뻐해 주겠지.


요새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엄마의 바람처럼 집에서 삼시 세 끼를 잘 먹고 있다. 엄마표 반찬이 있으니, 밥만 하면 맛깔난 한상을 차릴 수 있다. 


엄마 반찬으로 채운 집밥


반찬을 접시에 담을 때부터 입안에 침이 고인다. 아는 맛이 더 무섭다.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먹어온 맛이라, 보기만 해도 어떤 맛인지 절로 떠오른다. 

어묵볶음, 애호박볶음, 쥐포 볶음, 산나물 무침, 깻잎 장아찌, 오이지무침, 오이김치까지. 골고루 상에 올리고 나면, 엄마가 갓 차려준 밥상 같다. 혼자 먹어도 별로 외롭지 않다. 밥은 압력밥솥으로 한 게 아니라서 차지지 않고 가볍지만, 마음만은 묵직하다. 


엄마에게 반찬을 받아오고 나면, 맛이 금방 변할 있는 거부터 먼저 먹는다. 보통 나물류부터 먹고, 그다음이 어묵이나 호박 같이 말랑한 재료, 그다음은 오이김치처럼 푹 익으면 맛이 없는 김치, 가장 오래가서 천천히 먹을 수 있는 건 장아찌나 건어물류, 오래되면 오랜 된 대로 먹을 수 있는 배추김치 순이다. 그래도 혹시나 금세 맛이 변할까 봐, 한 번 먹을 때 많이씩 꺼내 먹는다. 


날짜 가는 줄 모르면서 지내다가도, 반찬의 맛이 변하거나 바닥을 보일 때면 본가에 갈 때가 된 걸 알게 된다. 냉장고 안의 시간은 언제나 정확하다. 


냉장고 안 가득한 반찬들


집에서 밥을 먹을 시간이 없을 때는 못 먹고 버릴까 봐, 쫓기듯이 반찬을 먹을 때도 있었다. 열심히 먹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져야만 다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가져온 반찬은 아주 싹싹 먹고 있을 같다. 빈 반찬통을 가지고 본가에 돌아가면, 엄마는 그러겠지.


"거봐라, 내 말이 맞지? 밑반찬은 항상 있어야 한다니까!" 


맞다. 엄마 말이 항상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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