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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B Aug 29. 2021

바다 생물이 좋아진다

식탁의 바다 내음


고추장에 오이를 찍어먹다가 불현듯 떠올랐다.


"다시마 쌈이 먹고 싶어!"


홀몸인데도 내 안에 또 하나의 자아라도 있는 건지, 가끔씩 어떤 음식이 갑자기 먹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이번에는 엉뚱하게도 다시마 쌈이었다. 싱싱한 오이에 매콤한 고추장 맛이 입맛을 돋우었나 보다. 오이를 다시마로만 바꾸면 된다.


가까운 동네 마트에는 육수에 쓰이는 건다시마뿐, 내가 원하는 생다시마가 없었다. 큰 마트에 가니 생미역 옆에 나란히 있었다. 두 팩을 묶어서 3,980원. 겨우 아메리카노 한잔 값인데도 그 앞에서 한참 고민했다. 


'혼자서 저건 너무 많은데.' 


다시마 팩을 들어서 꼼꼼히 살펴봤다. 유통기한이 2022년으로 거의 1년 정도였다. 왜 그렇게 긴지는 모르겠지만, 1년 안에는 다 먹겠지 싶어서 다시마를 사 왔다. 두 팩을 묶고 있던 띠에 다시마를 먹는 법이 쓰여있었다. 


'10분 이상 물에 담그되, 너무 오래 담가 두면 제 맛을 잃는다.' 


정직하게 다시마를 딱 10분 동안 물에 담갔다. 기대를 하면서 한쌈 크게 싸 먹었는데, 너무 짜서 그대로 뱉어버릴 뻔했다. 황급히 인터넷에 '다시마 쌈'을 검색했다. 블로그를 자세히 읽어보니, 생다시마는 염장이 되어있단다. 그제야 겉면에 쓰여있는 긴 유통기한이 이해됐다. 그것도 모르고 다시마를 제대로 씻어내지도 않고 고작 10분만 담그고 먹었으니. 소금 덩어리를 먹었던 셈이다. 


"그런데 내가 다시마 쌈을 언제 먹어봤더라?"


입맛은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집에서 먹고 자라는 음식에 따라서 길러지기도 한다. 부엌의 주인이 해주는 음식이 곧 좋아하는 음식이 되고, 안 해주는 음식이 곧 싫어하는 음식이 될 확률이 높다. 물론 변치 않는 호불호도 종종 있지만 말이다. 우리 집은 엄마가 비린내 나는 음식을 싫어해서, 해산물류를 즐기지 않는다. 그나마 엄마도 언니들과 내가 어릴 때는 골고루 먹이고 싶었는지, 생선 요리를 가끔 해주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비린내가 적은 임연수 구이와 코다리 조림 정도였다. 조개류는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자주 볼 수 있었던 해산물은 미역과 다시마였다. 미역은 미역국이나 미역줄기 볶음으로, 다시마는 다시마튀각과 다시마 쌈으로.


그렇게 어릴 때 엄마가 준 것만 먹어봤으니, 다시마가 염장이 되어있다는 걸 알리가 있나. 다음 끼니 때는 정신 차려서 다시마 쌈을 제대로 준비했다. 다시마를 끓는 물에 1분 정도 살짝 데친 후, 흐르는 물에 박박 씻었다. 이불 같이 큰 다시마를 손으로 잡아서 가위로 잘랐다. 집 고추장에 식초와 다진 마늘, 매실액을 넣어서, 간단하게 초고추장을 만들었다. 쌈이 심심하지 않게 오이와 크래미, 구운 닭가슴살을 짤막하게 세로로 썰어서 함께 했다. 


다시마 쌈

 

왼손에 삐죽삐죽하게 잘린 다시마를 펼치고, 초고추장을 한 젓가락 바르고, 오이와 크래미, 닭가슴살을 순서대로 하나씩 올렸다. 마지막으로 밥 한 숟가락을 얹어서 푸짐하게 쌈을 싸 먹었다. 미끄덩거리는 다시마를 씹으니 오도독거렸다. 아삭한 오이와 짭짤한 크래미, 담백한 닭가슴살이 매콤 달콤한 초고추장과 섞여서, 다시마의 은근한 바다내음과 어우러졌다. 하나도 짜지 않고 맛있었다. 밥 한 그릇을 금방 비웠다. 


나이가 들면 입맛이 바뀐다더니, 요즘에는 생선도 가끔 먹고 싶다. 지난달에는 어릴 때 엄마가 해주던 임연수 구이가 생각났다. 배달앱으로 집 근처 생선구이 집을 검색해봤다. 생선구이 전문점은 몇 군데 없었다. 신중하게 골라서 배달 시켰다.


임연수 구이 백반


작은 피자 상자 같은 걸 열어보니, 예상보다 더 큰 임연수가 노릇하게 구워져서 배를 까고 누워 있었다. 옅은 비린내가 났지만, 그 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정갈한 밑반찬과 고슬고슬한 흰쌀밥에 된장국까지 같이 왔다. 뼈를 잘 발라내고 하얀 속살을 큼지막하게 뜯어먹었다. 비릿한 맛과 함께 겉은 짭짤하고, 속은 담백했다. 하지만 내가 어릴 때 먹었던 그 맛이 아니었다. 뭔가 많이 심심하고, 속살이 조금 말라있었다. 오히려 밑반찬이 더 맛있었다. 엄마의 임연수 구이는 이보다 더 담백하고, 껍질이 바삭했다. 몇 년 만에 먹어보는 생선구이였지만 아쉬웠다. 


얼마 전에는 코다리 조림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진짜 내 기억 속의 맛을 위해서, 본가에 갔을 때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예전에 엄마가 해주던 코다리 조림이 먹고 싶어!"

"코다리? 생선뼈 골라먹을 줄은 알아?"


생선을 찾지도 않던 애가 대뜸 생선요리를 해달라고 하니, 혼자 먹을 수는 있을지 걱정이 되었나 보다. 엄마는 의아해하면서도 시장에 가서 코다리를 사 왔다. 금세 코다리 조림이 완성됐다. 양념이 잘 스며든 단단한 코다리 살과 부드럽게 익은 무를 같이 먹으니까 참 맛있었다. 간도 세지 않고, 적당했다. 내가 생각한 맛과 같았다. 냉장고에 잘 넣어놓고, 끼니때마다 두세 조각씩 꺼내서 전자레인지에 30초 정도 돌리면, 먹기에 딱 좋다. 한 동안 잘 먹었다. 


남은 다시마 팩


다시마 팩이 하나 남았다. 유통기한이 넉넉하니, 냉장고에 잘 넣어두었다가 반찬이 떨어지면 뜯어야겠다. 아주 요긴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오랫동안 '같은 돈을 주고 먹는다면, 바다 고기가 아닌 육지 고기를 먹겠다!'는 굳은 신념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요새 이상하게 바닷속 음식들이 조금씩 좋아진다. 


'같은 돈을 주고 먹는다면, 가끔은 육지 고기가 아닌 바다 고기를 먹어도 되겠다!'


이제 내 식탁에도 바다 내음이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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