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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B Sep 22. 2021

떡볶이 그만 먹어!

지겨워, 지겨워


내가 가장 많이 한 요리는 단연코 떡볶이다. 친언니와 살 때, 제일 많이 했던 요리니까. 


현재 서울에서 혼자 산지 3년 차인데, 그 전에는 3년 정도 의정부에서 친언니와 둘이 살았다. 언니는 의정부에서 학원 강사를 했고, 나는 서울로 회사를 다녔다. 언니는 주로 오후에 출근해서 밤에 퇴근했고, 나는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때 퇴근했다. 언니는 나가는 게 귀찮은 집순이였고, 나는 집에 있기보다 밖을 더 많이 돌아다녔다. 언니는 청소는 해도 정리를 잘 안 했고, 나는 청소는 안 해도 정리를 잘했다. 언니는 털털했고 나는 깐깐했다. 언니는 추위를 많이 타고, 나는 더위를 많이 탔다. 언니는 어두운 옷을 좋아했고, 나는 밝은 옷을 좋아했다. 작은 원룸에 무려 11살 차이가 나는 자매가 살면서도 부딪힐 일이 별로 없었던 건, 생활패턴과 성격이 많이 달라서였다. 


언니와 내가 달랐던 점 중에 또 하나가 언니는 요리를 싫어하고, 나는 요리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더불어서 나는 설거지를 싫어했지만, 언니는 요리보다는 설거지를 원했다. 내가 요리를 하면, 함께 먹고 언니가 설거지를 했다. 그 부분이 아주 잘 맞았다. 말로는 장난친다고 설거지 많게 그릇을 왕창 쓰겠다고 하면서도, 최대한 설거지가 적게 만들려고 했다. 그게 잘 되지는 않았지만.


어느 날 언니가 떡볶이를 해달라고 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흔쾌히 마트에서 떡볶이 재료를 간단하게 사 와서 해줬다. 기본양념은 항상 집에 있으니, 떡과 어묵만 있으면 되는 쉬운 요리니까. 고추장과 케첩을 넣고 국물은 자작하게, 적당히 매콤 달콤한 집 떡볶이였다. 언니에게 내 떡볶이가 꽤나 입에 맞았었나 보다. 그 이후, 툭하면 떡볶이를 해달라고 했다. 지겹게 많이 했다. 


"또 떡볶이야? 이제 그만 먹어!"


언니는 그렇게 자주도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밖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도 떡볶이를 먹을 일이 있었으니 더 자주 먹는 셈이긴 했다. 내가 떡볶이를 지겨워하자, 언니는 인터넷으로 떡볶이 밀키트를 사기 시작했다. 내가 떡볶이를 하는 횟수가 줄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언니가 억울할만했다. 언니는 집에서 먹는 떡볶이가 다였을 테니 말이다. 나와 언니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때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설거지를 많이 시키더라도 몇 번 더 해줄 걸 그랬나?'


언니가 본가에 가서 새로운 직업으로 지내기로 결정했다. 나와는 자연스럽게 따로 살게 됐다. 서울에는 가족도 친인척도 없다. 오로지 혼자서 씩씩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더 이상 내게 떡볶이를 해달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이제는 요리도 설거지도 다 내 몫이다. 처음에는 그게 참 아쉬웠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설거지를 내가 해야 되는 게 어색했다. 그래도 해야 하니까, 그렇게 계속하다 보니까 딱히 설거지가 싫지도 않아졌다. 내 1인분의 집안일 정도는 귀찮지도 힘들지도 않다. 




만둣국에 넣어먹다가 남은 떡국떡이 냉동실에 있었다. 더 오래되기 전에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랜만에 떡볶이를 만들어봤다. 나 혼자 먹으려고 떡볶이를 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동안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땐 집 근처에서 1인분만 사 오거나 배달 떡볶이를 시켰다.


떡볶이


예전에는 언니가 매운 걸 잘 못 먹어서 엄마가 만들어주던 것처럼 맵지 않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나만 먹을 거니까 맵고 자극적인 떡볶이를 만들었다. 프랜차이즈 떡볶이 가게의 레시피를 따라, 케첩 없이 카레가루와 고추장 비율을 높이고, 후추 가루를 많이 넣었다. 냉동실에 오래 있던 떡인데도 야들야들했다. 매운 걸 잘 먹는 편인데도, 약간 땀이 날 정도로 매웠다. 


"우리 언니는 절대 못 먹을 떡볶이네."


내심 웃음이 났다. 여전히 내가 만드는 떡볶이가 나쁘지 않았다. 


혼자 사니까 누군가에게 요리를 해줄 일이 별로 없다. 딱 내가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걸, 먹고 싶은 만큼만 한다. 가끔 친구가 자고 갈 때나, 지인이 방문했을 때 요리를 해주고, 함께 먹으면 굉장히 기쁘다. 아마도 누군가의 요청으로 요리를 한지가 오래되기도 해서겠지. 함께 먹는 음식을 자주 할 때는 그게 기쁜 일이라고 전혀 생각 못했다. 


배달 음식은 최소 주문 금액 이상을 시켜야 하는데, 그러면 혼자 먹기에 너무 많고 비싸다. 떡볶이 하나를 시켜도 만 오천 원 이상은 시켜야 하고, 거기에 배달비가 2~3천 원이 붙으면 거의 2만 원이다. 마트에서 2만 원으로 장을 보면 싱싱한 재료로 몇 끼니를 맛있게 해 먹을 수 있다. 그래서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요리를 더 자주 하게 됐다. 요리가 많이 늘었다. 지금의 나라면 예전보다 더 언니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생각은 잠깐이다. 본가에서 언니는 내 요리보다 더 맛있는 엄마 밥을 매일 잘 먹고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언니가 부럽다. 


문득 궁금해졌다. 언니는 요새도 떡볶이를 좋아할까? 엄마에게도 떡볶이를 만들어 달라고 할까? 생각해보니 언니가 본가에 간 이후에, 엄마가 떡볶이를 해줬다는 말을 못 들은 것 같다. 나와 둘이 살 때는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겠지. 언니도 나처럼 친구가 가까이에 없었다. 그렇다고 나처럼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아니었다. 학원과 집만 오갔다. 언니의 마음 한 구석이 비어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곳을 따끈한 떡볶이로 채우고 싶었던 걸까? 그랬던 거라면, 앞으로는 언니에게 떡볶이가 생각나는 시간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더 이상 혼자 집에서 뭘 먹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겨웠다고는 없어.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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