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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B Aug 18. 2021

청개구리 토마토

아빠의 하우스


지하철역 앞에 야채와 과일을 싸게 파는 가게가 있다. 출퇴근 길에 항상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느 날은, 새빨간 토마토가 반질반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어때? 맛있겠지? 나 한번 사갈래?" 


나는 홀린 듯 냉큼 토마토 한 바구니를 샀다. 


아빠가 몇 년 전까지 토마토 하우스를 하셨다. 그 당시에는 집에 항상 토마토가 많았다. 별로 달지도 않고, 야채도 과일도 아닌 것 같은 토마토를 왜 먹는지 알 수 없었다. 부모님이 몸에 좋으니까 먹으라고 해도 잘 먹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달고, 짜고, 매운 자극적인 음식이 아니면 싫었다. 


요즈음에는 자극적인 음식보다 신선한 재료로 만든 건강한 음식이 더 끌린다. 냉장고 안에 넣어둔 토마토 하나를 깨끗이 씻어서 한 입 깨물었다. 단단한 껍질이 툭- 하고 터지며, 입 안으로 과육이 가득 들어왔다. 은근한 단맛이 기분 좋게 혀를 감쌌다. 싱크대에 기대어, 우물거리면서 토마토를 어떻게 먹을지 궁리했다. 혼자서는 토마토 한 바구니도 충분하다며칠 동안 여러 끼니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


토마토 카프레제와 그릭 요거트

가장 간단하고 싱그러운 토마토 카프레제

생모짜렐라와 토마토를 툭툭 자르고, 위에 발사믹 소스와 바질 혹은 파슬리를 뿌려줬다. 토마토의 싱그러운 맛 그대로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단 게 생각날 때는 꿀을 살짝 뿌렸다. 이번에는 그래놀라를 올린 그릭 요거트와 함께 신선한 아침 식사를 했다. 


토마토 계란 볶음 (토달볶)


고소하고 달큼한 토마토 계란 볶음.

'토달볶(토마토 달걀 볶음)'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계란은 부드럽게 스크램블 에그로 만들었다. 파를 먼저 볶고, 먹기 좋게 자른 토마토와 새우를 함께 넣어, 굴소스를 메인으로 해서 볶았다. 집에 냉동 새우가 남아 있어서 넣어보니, 맛이 더욱 풍부했다. 함께 넣은 부재료에 따라서 감칠맛이 달라져서 좋다.


에그 인 헬 (삭슈카)

따뜻하고 새콤한 맛이 강한 에그 인 헬.

다른 이름은 '샥슈카'로, 주로 지중해와 중동 지역에서 즐겨 먹는 일종의 토마토 스튜이다. 토마토소스와 토마토, 각종 야채와 계란을 넣었다. 본래 향신료가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라서, 바질이나 파슬리, 후춧가루를 많이 넣었다. 모짜렐라 치즈를 얹고 푹 끓여서 먹으니, 몸이 따뜻해졌다.


키우고 관리하기가 힘든 농작물일수록 영양가가 좋고 활용도가 좋은 것 같다. 우리의 주식인 쌀이 다채로운 모습으로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것처럼. 토마토도 그 자체만으로 좋은 간식이면서 여러 재료들과 함께 다양한 모습으로 변한다.  




아빠는 수레로 이랑 깊숙이 들어가서, 수레가 가득 차야만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시간을 반복해야 했다. 아빠는 비를 맞은 듯 온몸이 젖은 상태가 되었다. 아빠의 작업복은 토마토 줄기에서 묻은 진액으로 항상 거무튀튀한 물이 었다. 엄마가 아무리 열심히 손빨래를 해도 지워지지 않았다. 위로 아빠의 땀까지 섞여서 옷은 금세 짙은 색으로 변하곤 했다. 


토마토를 모두 따고 나면, 아빠와 엄마랑 같이 하우스 한쪽에 둘러앉았다. 토마토에 묻은 때를 닦아내고, A급과 B급, 파지로 분류해서 상자에 담는 일이었다. 초반에는 쉽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쪼그린 다리가 저려오고, 숙인 목과 힘이 들어간 어깨가 뻐근해졌다. 맑은 날이 아니라도 하우스 안은 항상 후덥지근했다.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나는 빠르게 지쳐서, 수시로 토마토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시간도, 언젠가는 끝이 났다. 한참 접혀있던 몸을 피고 일어났다.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켰다. 온몸이 개운해졌다. 이때 열린 하우스 문으로 바람이 불어오면, 짜릿할 만큼 시원했다.


아빠가 땀 흘려서 쌓아놓은 토마토가 있을 때는 입에도 안 댔다. 그런데 지금은 돈을 주고 사 먹는다. 여태 나는 내가 부모님 말을 잘 듣는 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이제야 청개구리 같이 토마토가 참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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