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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B Sep 15. 2021

나 사실 닭갈비 안 좋아해

내가 노력했던 배려


분명히 마트에 닭갈비 재료를 사려고 갔다. 미리 인터넷 레시피를 찾아서 사야 할 재료까지 적어서 갔다. 하지만 내가 사 온 건 이미 양념이 되어있는 닭갈비 팩이다. 


양념 닭갈비 팩


내가 사려고 했던 재료의 가격이 대략 생닭다리살이 500g에 7천 원, 감자 한 봉지에 3천 원, 양배추 1/2 개에 2천 원이었다. 아쉽게도 내 1인분에 맞춰서, 고기를 300g만, 감자를 한 개만, 양배추를 1/4만 살 수 없었다. 재료들을 들었다 놨다 고민하던 중에, 생고기 옆의 양념 닭갈비 팩이 눈에 들어왔다. 겨우 8천9백 원 밖에 하지 않았다. 재료를 하나씩 다 사서, 양념을 만들고 고기에 재는 노력 값까지 생각해봤다. 내 손은 당연하게 8천9백 원짜리로 움직였다. 요즘 세상은 요리하는 1인 가구에게는 아직도 불편하지만, 요리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참 편한 세상이다. 


치즈 닭갈비


양념된 고기에 양파와 파를 넣고, 국물이 자작하게 물을 살짝 부었다. 마지막에는 모짜렐라 치즈를 얹었다. 아주 쉽게 맛있는 닭갈비를 먹을 수 있었다. 적당히 매콤하고 고기가 부드러웠다. 역시 대기업의 맛은 최소 평균 이상이다. 지금은 닭갈비를 잘 먹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별로 안 좋아했다. 




5~6년 전쯤에 친구와의 대화가 생각났다. 친하게 지내는 무리 중의 한 명과 단 둘이 만났을 때였다. 같이 먹을 식사 메뉴를 고르던 중에 닭갈비가 언급됐다. 나는 딴생각을 하다가 그냥 툭 말했다.


"나 사실 닭갈비 안 좋아해."


친구가 가던 길을 멈추고 놀라서 물었다. 


"닭갈비를 안 좋아한다고? 우리 여태 자주 먹었는데? 왜 말 안 했어?"

"다들 좋아하니까."


그 친구들과 함께 한지 5년 정도 되었을 때였다. 그때 친구도 나도 당황했었다. 알레르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즐기지 않을 뿐이었다. 친구들이 좋아하니까 군소리 없이 같이 먹었다. 내가 친구들에게 할 수 있는 배려라고 생각했다. 나 때문에 좋아하는 음식을 못 먹게 하거나 메뉴 선정을 어렵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는 그런 단순한 기호도 얘기하지 않는 내가 놀랍고 자못 섭섭하기도 했던 것 같다. 


'내가 노력하는 배려'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구나. 서로 친하고 좋아하는 사이에는, 좋아하는 것뿐만 아니라 싫어하는 것도 이야기하는 것. 좋아하는 건 함께 하고, 싫어하는 건 멀리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그런 모든 것들이 쌓여서, 우리만의 시간이 되는 것이었다.


그 이후부터는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걸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토 달면 피해를 주는 게 아닐까?'


처음에는 내 안의 검열로 쉽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그런 것쯤은 그래도 된다. 이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말하려고 노력했다. 한두 번씩 해보고 나니, 점 쉬워졌다. 내가 싫어하는 걸 말해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이제는 내 호불호를 잘 말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나는 그들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내가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웠던 건 아닐까. 소외당하지 않게, 모든 걸 OK 하는 모나지 않은 사람이 되어서, 단지 조금이라도 더 사랑받고 싶었던 거 아닐까. 그때의 어린 나는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 더 많이 눈치를 보고 몸을 사렸다. 나를 향한 혹은 내게 향하지도 않았을, 사람들의 작은 말과 행동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흔들렸다. 내가 사람에게 마음을 준 만큼 내게 돌아오길 기대했고, 그렇지 않아서 쉽게 상처 받았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부딪히고 상처 받는 걸 반복하고서야 조금씩 무심해지고 단단해졌다.  


현재의 나는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 없다는 걸 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듯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와 맞는 사람은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친해지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노력해도 친해질 수 없다다행히도 어릴 때 가졌던 관계에 대한 집착은 없어진 지 오래다. 관계를 내려놓으니까 더 많은 사람들을 편하게 만날 수 있었다. 


현재 내 주위에는 나의 결점과 결핍까지 그대로 나를 인정하고 받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 또한 그들이 장점만 있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들이라서 좋다. 편하게 나는 내가 싫어하는 걸 말한다. 


"나는 강한 신맛, 생선 비린내, 소면, 마라탕, 고수, 청국장을 싫어해요. 그런데 가끔 이렇게 싫어하는 것들도 갑자기 끌려먹을 때가 있어요. 일관성이 없지만, 뭐 어때. 그래도 괜찮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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