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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land Nov 14. 2021

가족 여행

인생샷을 남기는 마음

꽤 오랜만에 2박3일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목적지는 제천의 한 숙소였다. 울창한 산 속에 위치한 독채 건물에 일행끼리만 머물 수 있어 가족 단위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좋은 곳이었다. 그저 잠깐 쉬러가는 거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설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집에는 아이스박스 한가득 여행가서 먹을 음식들이 가득했다. 멜론, 밤, 고구마, 오징어포, 카프리선 등. 하나 하나의 메뉴들 전부 여행지에서 혹시 모를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해 섬세하게 준비된 아이템들이었다. 이제 모든 건 준비되어 있고, 이제 안락한 숙소에서 쉬기만 하면 되는 듯 해 보였다.


그럼에도 이 여행의 주최자이자, 가이드인 나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와 동생의 체력을 따라가지 못할 부모님의 혹시 모를 피로함을 줄이고,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나는 2박3일의 일정을 촘촘히 짜 왔다. 계획은 실행보다는 계획하고 있을 그때 더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나지만, 가족 여행에서의 방심은 금물이었다. 가이드로서의 책임감이 막중하게 느껴졌고, 체크인부터 방에 들어가기까지의 동선, 각기 다른 식당 후보까지 준비해 두었다. 아마 부모님이 나에게 했던 기대는 딱 여기까지 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심 내가 더 공을 들이고 있던 업무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생샷 찍기’ 였다. 나의 음식점 선정과 일정 수립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던 것이 바로 이 업무였다. 일상에서 인생샷을 남기기 보다는, 이 곳에서 인생샷을 찍는 것이 보다 수월해 보였다. 핸드폰 카메라에 삼각대, 고프로 등 다양한 기기들을 바탕으로 남동생과 의기투합한 우리 남매는 끊임없이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한걸음 한걸음,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같은 장소에서도 수도 없이 포즈를 교체하라는 우리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던 아빠는 엄마에게 말했다.


“얘네들이 지금 복수하고 있는게 분명하다고. 당신이 어렸을 때 애들에게 하던 행동을 지금 똑같이 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자, 파노라마처럼 생각났다. 대학교를 막 입학한 스무살 때, 가족끼리 유럽여행을 떠났다. 무려 2달 동안의 일정이었다. 아빠는 자동차를 장기 렌트해 우리에게 유럽 곳곳을 보여주셨다. 두달과 맞바꾼 부모님의 시간과 또 들었을 비용 등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신나 있는 우리의 사진을 엄마는 계속해서 찍었다. 프랑스 시골 마을의 예쁜 성당 앞에서, 문고리를 잡으라고, 고개를 돌리라고 연신 외치는 엄마와 부끄러움에 괜찮다고 도망다니던 나의 모습이 기억났다. 아마, 그때의 엄마 또한 나만큼 절실히 나의 인생샷을 남겨주고 싶었을 것이다.


가끔 오래 관계를 맺는 상대방의 모습이 바뀌면 실망할 때가 있다. 하지만 부모님 또한 언제까지나 나에게 주기만 하는 사람으로 남지는 못하듯 모든 관계는 끊임없이 변한다. 십여년 전에는 나를 계속해서 찍어주던 부모님이 더 이상 카메라를 들지 않는다고 해서 자식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받기만 하던 관계는 어느 순간 주고 받게 되고, 또 나아가 주기만 하는 관계가 될 수도 있지만 그 애정은 변함없을 수도 있다. 상대방이 변할까 상대의 진심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건 아닐까 조심스러웠던 과거의 시간이 조금은 후회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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