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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land Nov 21. 2021

돌담을 쌓는 마음

최진영 단편소설집 ‘겨울방학’ 중 ‘돌담’

선과 악이 명확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가끔은 옳은 행동이 옳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가끔은 옳지 못한 행동이 생각보다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그렇게 미미하게 흘러가기도 한다.     


소설가 최진영의 단편소설집 ‘겨울방학’에 실린 단편 ‘돌담’에는 어린이용 장난감과 문구를 만드는 곳에서 일한 ‘나’가 등장한다. ‘나’가 있는 곳에서 사장과 영업부장은 태연히 사용 금지된 화학 첨가제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그것은 ‘프탈레이트 가소제’. 이미 몇 년 전에 프탈레이트 가소제 기준치 초과로 단속에 걸렸었고, 제품 수거 명령을 받았지만 리콜 사건이 잠잠해지자 다시 그 첨가제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확신할 수 없다. 정말 나쁜 게 맞는 건가? 여기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혹시 쓰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쓰고 있는 게 아닐까? 스스로를 속이려고도 해본다. 스스로도 납득되지 않은 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수습사원에게 회사 대리인을 자청하기도 한다. 혹시 프탈레이트 가소제는 설탕 같은 거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너무 많이는 아니어도 적당히는 먹어줘야 하는 것.’ 혹시 우리는 나쁜 걸 서로 조금씩 나누면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결국 ‘나’는 뾰족 튀어나오게 된다.


4 넘게 일한 회사에서  속의  같은 존재였다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화자는 회사를 신고한다. 내부고발자가 되어 퇴사까지 했지만 겉보기에 회사는, 그리고 세상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보인다. 고향의 내려온 화자가 발견한 것이 돌담들이다. 중학교 수학 선생이었던 할아버지가 퇴직한 다음날부터 허전한 마음을 달래 가며 쌓은 돌담, 그리고 자식을 잃은 부모가 담이 없던  옆에 하릴없이 쌓아가는 돌담.


나’ 또한 퇴사하고 돌 하나를 쌓은 셈이다. “괜찮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괜찮겠지, 괜찮겠지, 아직은 괜찮겠지, 기만하는 수법에 익숙해져 버린 형편없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서.” 그럼에도 세상은 바뀌지 않아 보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무엇을 계속 쌓아갈지는 나의 선택이라는 점이다. 아직은 지금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알 수는 없지만, 화자는 돌을 찾으며 길을 걷고 소설은 끝이 난다.


나’가 다니던 회사의 영업부장도, 사장도 괜찮다고 정말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가 잠시 동안 혹시 프탈레이트 가소제는 설탕 같은 거일 수도 있다고 내면화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세상이 점점 나빠지는 것은 너무도 많은 원인들이 작용한 결과이기에, 그들의 잘못은 결국 끝까지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죄책감을 느끼고, 결국 진실은 내뱉어진다.


담을  쌓고 나서 그다음에 느껴지는 허전한 마음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화자에게, 화자의 엄마는 말한다.  

  

그런  어떻게  수는 없는 거고,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한 거지. 그러다 보면 이것저것 섞여서 본래 마음에 가까워지는 거지. 본래 마음은 바다 같은 거다. 바다에는 고래도 상어도 있고, (...) 이것저것  섞여서.”   


마음이 바다에 가까워진다면, 화자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감히 그 돌담을 쌓아가는 마음을 헤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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