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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land Dec 06. 2021

우리들의 티 타임

장편소설 <최진영_내가 되는 꿈>

EIDF 영화제에서 <티 타임> 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고등학교 동창인 다섯 명의 할머니들이 매달 하루 네시가 되면 모여서 티 타임을 갖는다. 서로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보며 시간을 쌓아온 할머니들의 티 타임은 가지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사실 좋은 관계도 별게 아닐 수 있다. 나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누군가와 시간을 보낸다는 게 사실 우정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이 다큐멘터리가 최진영 작가의 <내가 되는 꿈> 이라는 소설을 읽으며 문득 떠올랐다.


고등학교 동창이, 대학교 동기가, 회사 동료가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것처럼 또 ‘나 자신’이 나의 친구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 최진영은 작가의 말을 통해 ‘스스로가 너무 못마땅해서 끈적끈적하고 희뿌연 기분에 잠겨 버릴 때는,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와 공존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다양한 시간, 다양한 공간, 다양한 우주에 내가 존재한다면, 어떤 세계에서 내가 슬퍼할 때 다른 세계에서 나는 기쁠’것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좀 더 담대하게 현재에 집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소설 속에는 10대의 나와 30대의 나가 등장한다. 남자 친구와의 관계, 할머니의 죽음, 내가 사라지는 직장 생활로 인해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 하는 30대 태희와 어리다는 이유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른들의 결정에 휘둘리는 탓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10대의 태희. 주인공 태희의 10대 시절 모습에도 30대 시절 모습에도 어렴풋이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 몰입은 쉬웠다. 서로에게 한 번씩 편지를 보내는 소설적 설정을 통해 두 인물은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연결된다.


서로의 존재를 느꼈다고 해서, 그들의 현실에 극적인 변화가 있지는 않다. 30대의 태희는 그저 미뤄왔던 일들을 하나씩 해낼 뿐이다. 직장을 정리하고, 지나버린 친구의 생일을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집을 정리하고 할머니가 머물던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어린 시절 썼던 일기를 발견하고 읽고 또 읽는다. ‘비는 비고 바다는 바다다. 나는 나만 될 수 있다. 나는 남이 될 수 없다.’ 눈앞의 어려움을 해결한다고 해서 삶이 크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나는 내일의 내가 될 테고, 조금 부끄럽고 유치한 모습 그대로 일 지라도 내일의 나는 나만 될 수 있다.


다시 <티 타임>을 생각한다. 하루의 끝도, 시작도 아닌 애매한 시간 오후 네시. 티 타임이 시작된다. 동그란 테이블의 내가 앉아 있다. 왼쪽에는 교복을 입은 십 대 시절의 내가, 오른쪽에는 졸업을 유예하는 이십 대의 내가. 서로 다정하게 안부를 물으면서도 모두 시선은 맞은편에 비어 있는 한 자리에 가 있다. 찻잔에 차를 따르는 순간, 미래의 내가 들어온다. 그렇게 우리들의 티 타임이 시작된다. 미래의 나를 다독이고, 또 응원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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