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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land Aug 13. 2023

생활인으로서의 감각

2023년 현재 직장을 다닌지 9년차에 접어들었다. 2015년 11월 첫 회사에 입사한 이후 무려  거진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회사를 다니고 있는 셈이다. 살면서 많은 부분이 그러하듯, 순간의 결정은 미래의 많은 부분을 좌우한다. 첫번째 회사의 최종 발표가 났던 날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는 여러 갈래의 길 앞에 서 있었고, 그럼에도 먼저 전해진 합격 소식의 감회는 남달랐다. 이렇게 오래 다니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막막한 내 앞날에 미리 전해진 승전보와 같이 느껴졌다.


처음 회사에 출근해서 큰 강당에 모여앉아 한달 가량 교육을 받을때 들었던 생각은 내가 속했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곳이라는 점이었다. 먼 미래에 고정되어 있던 나의 시선이 지금 내 발앞, 여기로 옮겨진 것만 같았다. 나는 지금 이 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이곳에서 돌아가는 모든 방식은 그동안 내게 익숙했던 방식과는 다소 달랐다. 가장 달랐던 부분은 ‘무엇을 중요하게 느끼는가’였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점과 이곳에서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은 차이가 있었다. 함께 입사한 마흔명의 동료들과 함께 고단함을 나누며 출퇴근을 이어간 내가 가장 많이 들은 팀원들의 조언은 “그래도 그동안 그렇게 해온 데에는 이유가 있는거야.” 라는 말이었다.


첫 3개월은 1년처럼 길게만 느껴졌는데 최근 3년은 1년도 안되는 짧은 시간처럼 느껴진다. 긴 시간동안 나의 무엇이 바뀌었나 골똘히 생각해보면 ‘생활인의 감각’이 생겼다는 점이다. 조직 내에서, 그리고 조직 밖에서의 나의 생활을 채우는 감각을 배워나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이전의 나는 삶의 다양한 허들을 뛰어넘기위해 고군분투했었고, 일상을 살필 여력은 부족했다. 허들을 향해 뛰어가는 과정은 넘거나, 넘지 못하거나 둘 중의 하나의 결과로 나에게 돌아왔고 그 과정에서 일상은 걸리적거릴 뿐이었다. 미래를 담보로 일상은 유예되었다.


일주일에 5일이나 반복되는 출근과 퇴근으로 삶의 반복되는 루틴이 생겼다. 반복되는 루틴이 삶을 단조롭게 만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나는 애써 나의 일상을 다채롭게 채워나갔다. 출퇴근 외의 나의 일상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는지가 나의 존재 의의를 나타낸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생활을 꾸려 나갔다. 내가 자의로 만들어나가는 생활의 방식을 조각처럼 모아붙여 나라는 사람의 모자이크를 완성하고 싶었다. 저녁이면 매일 요가원에서 수련을 이어가며 갑작스레 되는 동작에 기뻐하고, 금요일 저녁이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본가로 온다. 토요일 아침이면 본가에서 도서관에 가 보고 싶었던 책을 빌려오고, 월요일 저녁이면 독립한 지역의 도서관에 들렸다 방으로 돌아온다. 소소하지만 내가 꾸려가는 일상들을 보며 무사히 세상에서 활동하는 생활인으로서의 감각을 일깨운다.


생활을 꾸려가는 가운데 문득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아일랜드 드라마 <노멀 피플>의 남자 주인공 코넬은 촉망받는 학생이자 인기도 많았던 고등학생 때와 달리 대학교로 진학하며 새로 속한 공동체에 적응하지 못한다. 계속해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라며 선을 긋고 과거를 미화하며 고향을 그리워하며 망가지던 주인공이 마지막에는 뉴욕으로,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난다. 여자 주인공과의 꽉 닫힌 결말을 기대했다면 좀 아쉬울 것 같지만 ‘드디어’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게 홀로 선 것 같아 박수가 절로 나왔다. 뉴욕에서의 홀로서기를 기대하며,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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