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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land Aug 07. 2023

문장을 이어간다는 것

나에게는 문장이 있다, 고 생각하면 조금 힘이 난다.


내가 쓴 문장들 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읽었고,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 했지만 서글플 만큼 금방 휘발되기도 하는 그 문장들이 혹시 내 몸과 마음 어디인가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나는 그만둘 수 없다. 또 다른 문장이 다시 나를 깨우기를 기다리며 나는 부지런히 읽을 뿐이다.


어떤 문장은 경이롭게도 여러 번 다른 상황에서 접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나를 멈추게 만든다. 예를 들어,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에서 읽은 문장이다. 나는 그 책을 여러 번 읽었다. 이십 대 초반의 나는 그 소설 중 주인공을 닮고 싶었고, 주인공의 이름 ’니나‘는 오랜 순간 나의 닉네임으로 자리했을 정도이니 여러 번 줄 치며 읽은 기억이 선명하다. 그런데도 다시 접할 때면 초면인 것 같은 문장이 나타나기도 한다.


백수린 작가의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에서 나온 <생의 한가운데> 문장은 다음과 같다.


‘아무것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


불쑥 등장한 이 문장을 들여다본다. 작가는 이 문장에서 무엇을 봤기에 이 소설에 다시 등장할 때까지 품고 있었던 것일까. 같은 텍스트를 읽어도 독자마다 품게 되는 문장이 다르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모든 문장이 진실을 담고 있지는 않다. 어떤 문장은 하나의 문장을 진실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이어지다 보면 하나의 소설로 태어나기도 한다. 그 과정은 경이롭다.


하나의 이야기를 직조하기 위해 문장을 이어가는 이의 부지런함을 떠올린다. 나의 문장을 있는 그대로 읽어줄 누군가를 위해 끊임없이 문장을 짓고 있는 누군가를. 나는 그 문장을 기쁜 마음으로 이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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