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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land Feb 27. 2023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

만난 사람들: 인도 자영업여성 ‘video sewa’

나는 어쩌다 그녀들의 영상을 보게 되었을까. 과제를 하기 위해 무한한 정보의 바다를 헤엄 치던 중, 우연히 접한 영상에 그녀들이 있었다. 3분 내외의 짧은 영상이었다. 인도에서 야채노점상을 하던 여자들이 카메라 조작법을 배워 자신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올렸다. 그녀들이 만든 영상의 초점은 흔들리고, 음향은 잡음이 섞여 있었지만, 내용만큼은 흡입력 있고 진솔했다. 특히나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인터뷰하는 그녀들의 눈동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들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그 당시 나의 일상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 년 동안의 휴학을 마치고 복학한 3학년 1학기 봄이었다. 휴학 기간을 알차게 보내겠다는 결심은 조각나지 않은 뭉텅이의 시간과 함께 흘러버렸고, 정신을 차려보니 3학년이 되어 있었다. 반환점을 돌았다는 초조함과 함께 이제는 좀 몰두해야 할 분야를 찾아야 할 때라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지만, 정작 마음 둘 곳은 쉬이 찾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던 중 발견한 그녀들의 영상은 나를 사로잡았다. 카스트 제도가 여전히 존재하고,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가 남아 있는 인도에서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선 여성들이라니. 그들은 어떤 확신으로 그렇게 움직일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나는 당장이라도 그녀들을 만나야겠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나와는 다른 그녀들의 삶을 만나면 내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과 함께 7월 인도로 떠나 그들과 한 달 동안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자영업 여성연합 ‘VIDEO SEWA’에 속해 있었다. 채식과 공업의 도시 아메다바드의 방 두 칸짜리 작은 사무실에 그녀들이 있었다. 처음 그녀들의 사무실을 찾아가던 길은 아직도 생생하다. 숙소에서 나와 매연과 교통체증으로 한 치 앞을 보기 힘든 길을 걸어 육교를 건너고 나면, 그녀들의 사무실로 쓰는 파란 단층 건물이 언뜻 보였다. 매캐한 공기 속에서 보이는 건물 조각은 유독 파랗게 느껴졌다.


막상 그녀들과 처음 만났을 , 나는 다소 실망했던  같기도 하다. 그녀들을 사회와 전통에 맞서 싸우는 전사와 같은 이미지로  멋대로 그들의 모습을 설정하고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구자라트 주에서 쓰이는 공용어 구자라트어를 쓰는 그녀들과 의사소통은 쉽지 않았고, 우리는 그저  시간 함께 짜이를 마시고, 편집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시간을 보냈다. 좁은 사무실에서 내리 시간을 보내는 우리를 멤버   명이 오토바이를 태워 함께 인근의 마을에 방문했을 때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그녀들비슷한 처지의 다른 문맹 여성들을 위한 카메라 촬영 교육이 열린 날이었다. 빈민촌 마을의 열린 교육을 들으러  여성들이 비좁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직접 만난 그녀들은 자신들의 삶에 극적인 변화는 없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노점상을  때보다 경제적으로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여성들을 위한 교육 또한 병행하고 있기에 실제 생활이 넉넉해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각종 행사와 결혼식 촬영 같은 경제활동으로 미래를 기약할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그녀들이 카메라 기술을 익히며 얻게 된 것은 경제력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자신들의 삶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지금도 가끔, 내가 맞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가 혼란스러운 날이면 인터넷에 <VIDEO SEWA>검색해 보곤 한다. 3  그녀들은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고, 지금으로 부터 11개월  마지막 영상을 올렸다. 아직도   칸짜리 사무실에서 영상을 만들고, 카메라 가방를 메고 오토바이를 탄 채 누군가에게 자신이 배운 것을 전하러 가고 있을까. 그녀들이 여전히 자신들이 걸어온 길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기를 바라며, 내가 걸어온 길을 응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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