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inaland Mar 05. 2023

봄이 온다는 기적

겨울을 지나 인생에도 봄이 올까요?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공원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양옆에 즐비하게 늘어선 앙상한 나무 끝 자리를 잡고 있는 새집을 발견했다. 도시의 역사만큼 오래된 나무는 아파트 십여 층높이로 끝도 없이 뻗어나가고 있었는데, 그 위에 나무줄기보다 두툼한 새집이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저 큰 둥지를 어떤 새가 만들었을까, 아직도 저 집에 살고는 있을까 상상하며 걸어가는데 문득 이 상황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출퇴근하며 매번 지나는 길이라 매일 보는 나무였는데 그 안에서 둥지를 발견한 건 처음이었던 것이다. 봄과 여름을 지나며 무성해지는 나뭇잎이 떨어져 보이게 된 것이라면, 겨울이 지나치기 쉬운 무언가를 발견하기에 좋은 계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겨울을 다 보낸 지금에서야 들었다.


자신이 태어난 계절을 보통 더 좋아한다는 속설을 들은 적 있는데, 그와 달리 겨울에 태어난 나에겐 제일 보내기 힘든 계절이 겨울이다. 위아래로 내의를 갖춰 입다 보니 두꺼워진 옷은 몸을 움직이기에 불편하고, 잠시만 방심해도 뼛속까지 느껴지는 추위는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평소에 좋아하던 산책을 하기에도 겨울은 자비롭지 못했다. 또한 지인들을 만나 술을 마시며 나른한 기분에 취해 있고 싶다가도, 가게를 나서 추위를 마주하게 되면 알코올이 선사해 준 기분 좋은 고취감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온몸이 덜덜 떨리고, 이에서 딱딱 소리가 나다 보면 평소와 달리 한 잔 더를 외치기보다는 너나 할 거 없이 따뜻한 보금자리로 돌아가자고 입을 모아 말하게 된다.


추위보다 괴롭게 느껴지는 것은 어둠이다. 성실한 노예(?) 혹은 직장인으로 아침에 출근해 하루를 보내고 나면 퇴근길에는 어김없이 어둠과 마주하게 된다.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애써 부지런히 나서 낮에 산책이라도 하지 않으면 영영 해를 보기는 틀린 셈이다. 햇빛을 충분히 쐬지 못하면 아무래도 몸 안에 있는 비타민 D 수치가 낮아지게 되고, 평소보다 잠을 과도하게 잘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해를 보는 시간이 하루 두 시간 이내라면 평균 수면 시간보다 2시간에서 4시간까지 더 많이 수면을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긴 한국인의 근로시간에 더해 수면시간까지 늘어난다면, 그 외의 취미나 사교생활은 꿈도 꿀 수 없는 회사인간이 되는 법이다.


그럼에도 내가 삼십여 년 넘게 겨울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정도 나의 성향에 기반해 있다고 생각한다. ‘곧 봄이다’는 내가 잃지 않고 초심처럼 지켜오고 있는 삶의 모토이다. 겨울이 절정에 달해 있을 때면, 더 이상 지구에 온기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극적인 상상에 까지 빠지게 되는데 이런 불길한 생각을 한달음에 쫓아주는 것이 바로 계절의 순환이다. 어김없이 이즈음이면 성큼 와있는 봄의 존재는 겨울의 추위와 어둠에서 벗어나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작은 온기를 전해준다. 사계절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을 먼 과거에 살았던 우리의 선조도 매년 겨울을 보내며 올해는 과연 봄이 올 것인지 긴가민가한 마음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나의 삶 또한 지금 당장은 매서운 한겨울로 느껴질지라도 조금 더 버티다 보면 빛나는 봄이 올 거라고, 계절의 순환을 믿듯 나 또한 나의 내일을 믿으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주말을 맞이하여 일기장을 다시 꺼냈다. 새해가 시작되고 나서도 다시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가 나지 않더니, 이제야  다시 들춰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 것이다. 작년 12 3일에 마지막으로 썼고,  3 4  일기를 썼다. 겨울잠 자듯 오래 웅크리고 있었으니 이제 다시 부지런히 쓰고, 읽고, 움직여야지. 봄이 온다는 기적이 매년 어김없이 일어나듯, ‘ 봄이다’.

작가의 이전글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