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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land Mar 27. 2023

아니 이번엔 ‘진짜’ 못할거 같다고

그럼에도 약속했기에 이번에도 해냈다, 저번주에도 했으니까.


이번엔 진짜인 것 같다, 는 기분이 든다. 아아, 나의 되는대로 얼렁뚱땅 살아온 삶의 궤적은 그런대로 성과를 내는데 성공해온 것 같지만 이번엔 정말로 한계에 도달했다. 마감까지 남은 시간은 단 한시간 이십 이분인데, 아직 단 한 문단을 쓰는데도 성공하지 못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무려 일주일이나 있었음에도, 168시간 중 단 2시간도 채 남지 않은 지경에 이른 것이다. 모든 마감이 그러하듯, 나는 이제 곧 나에게 주어질 벌칙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마감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는가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N잡러들이 속출하고, 소득을 늘려 경제적 자유를 이루는 시점을 앞당기는 것이 직장인들의 지상최대 과제가 된 오늘날에 (먼 미래, 언젠가는) 나의 소중한 부가수입원이 (하루에 아메리카노 한잔씩 사마실 정도라도 좋으니) 되어줄 글쓰기 마감을 난 단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항상 데드라인 직전까지 마무리 짓지 못하고 끌고 오는 이유는 나의 고질병 중 하나인 미루는 습관 때문일 터인데, 이 습관에 모든 탓을 돌리자니 조금은 억울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든다. 왜냐면 이 미루는 습관은 꼭 마감 직전까지 나를 고통받게 했음에도 정작 ‘진짜 망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직전까지만 미루는 기가막힌 완급 조절을 해왔기 때문이다. 나의 이 습관은 나라는 인간이 성과를 내야 했던 모든 순간에 개입하며, 이번에야말로 실패할 것 같은 긴장감을 조성하다 진짜 망하기 전에는 슬쩍 사라져 뭐라도 결과물을 낼 수 있게 도와줘 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라는 인간은 어떻게, 미루는 습관을 가지고 있음에도 ‘진짜 망해버리지는’ 않는 삶을 살고 있을까에 대해 이번 기회에 진지하게 고찰해보니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함께한 약속’이고, 하나는 ‘해냈던 기억’이다.


아마도 혼자서 했다면 미루고 미루다 그만두었을 브런치 글쓰기를 이어써오고 있는 것도 바로 ‘함께한 약속’의 결과물이다. 브런치를 매주 일요일 업로드하기로 혼자 마음먹었다면 아마 미루기 천재인 나는 데드라인을 조금씩 미루다가 (마무리가 마음에 안드는데 자기 전까지 써서 올려볼까, 아침에 수정하고 올리는 게 좋겠다, 아니 잠시만 그냥 지친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월요일에 올리는게 게 조회수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결국 그만두었을 것이다. 글이 올라오지 않는다고 속상해하거나 항의하는 구독자가 아직 없으니까, 그만두는 정도로 진짜 망할 건덕지도 없다고 정신승리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한참을 미루다, 올해들어 다시 올리기 시작한 것은 매주 꾸준히 쓰기로 ‘함께 약속’한 덕분이다. 일요일 밤까지 글을 올리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한다고 말이다. 현재 시점으로 벌금은 무려 20만원이다. 벌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 닥친다면 정말 망할지도 모른다.


‘해냈던 기억’ 또한 큰 도움이 된다. 이번에야말로 실패를 맞닥뜨릴 것 같다는 두려움은 생각보다 힘이 크다. 특히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채로 무언가를 끝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일의 경중도 순서도 제대로 헤아리기 힘들 때가 많다. 가망이 없다는 마음이 부풀어 오르며 그대로 놓아버리고 싶기도 한데, 그럼에도 해냈던 기억이 있다면 이번에도 적어도 어떤 마무리를 지을 수 있게 된다.


지금 남은 시간은 고작 3분이다. 아니, 이번엔 진짜 못할 것 같다고. 진짜 못할 것만 같았는데 그래도 어찌어찌 글을 써왔다. 이번에도 적당한 타이밍에 사라져 준 미루기 습관 덕분에 이번에도 결국 해낸 기억을 바탕으로 다음번에는 정말 더 빨리 쓰겠다고 다짐 해본다. 올리기도 약속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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