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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land Apr 02. 2023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

언제쯤 솔직해질 수 있을까


일기를 가끔 쓴다. 매일 쓰겠다 다짐하지만 빈틈없는 사건들로 채워지는 일상을 살아내며 일기를 쓰는 일은 사실 쉬운 일은 아니고! 그런 고로 존재가 잊히지는 않을 정도의 명맥을 이어오며 일기를 써왔다. 가장 일기를 많이 쓰는 시기는 아무래도 인생이 쓰게 느껴질 시기인데, 이럴 때는 펜만 잡으면 문장을 써 내려갈 수 있다. 창조성은 혹시 고통에서 발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끝없는 폭발력이 있다.


그 폭발이 언제 일어날지는 나 또한 쉬이 파악하기 힘들기에 보통 일기장을 매일 들고 다닌다. 매일 쓰지 않기에 더더욱 소중한 쓰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만반의 준비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내 가방에는 주로 언제 쓰게 될지 모르는 온갖 물품들로 가득하다.) 기회는 앞머리만 있는 대머리라서 지나간 후에는 잡으려 해도 소용이 없다는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 속 문장을 받들어, 뭐라도 움켜쥘 수 있을까 하여 준비된 나의 일기장!


노트의 두께, 스프링의 유무, 줄의 너비, 종이의 질감을 따져 고른 소중한 내 일기장에 쓰인 내용을 볼 수 있는 독자는 오로지 나이다. 숙제로 일기를 써내야 했던 초등학생 때나 교환일기를 쓰던 중학생 때 이후로 단 한 번도 남에게 일기장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워낙 날 것의 감정이 그대로 담겨있어 쓴 일기를 다시 읽어보기는 쉽지 않은데, 저번 주에는 특정 구간만 다시 펴 읽게 되었다. 회사에 있었던 화나는 일에 대해 지인에게 이야기하려는데, 왜 그렇게 느꼈는지 디테일한 부분에 대한 기억이 어렴풋해 그때의 감정을 되살리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시 읽은 일기에는 반쪽의 진실만이 담겨 있었다. 오로지 내 입장을 변호하기 위한 왜곡과 생략까지. 아무도 글을 읽고 판단하지 않으련만,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가 느낀 감정과 놓인 상황에 대해 합리화하며 누군가를 설득했다. (대체 누구를? 거기 누구 있나요!) 일기에서 조차 나는 솔직하지 못했다. 혼자 읽고 보는 일기에서 조차 그럴지인데, 남들도 볼 수 있는 글에서는 대체 얼마나 솔직하지 못했던 걸까! 어떤 부분을 솔직하지 못하게 썼는지에 대해 솔직하게 쓰지 않았다는 사실도 나의 솔직하지 못함을 보여주는 부분이 아닐까!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솔직해 지기란 진짜 어렵다. 우선 일기 또한 언제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공개될지 모른다. 당장 내일이라도 버스에서 잃어버려 분실물 센터를 떠돌아다니며 읽히는 존재가 될지 모르는 일이다. 뿐만 아니다. 카프카는 자신의 작품을 모두 소각하라고 유언을 했지만 그의 친구는 이를 따르지 않고 심지어 일기까지 출판했다. 실비아 플러스의 일기 또한 동의 없이 출판된 사례가 있지 않은가! 사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사후에라도 나의 기록물들이 출판되었으면 하는 입장이지만, 아 혹시 그래서 내가 일기장에서 조차 솔직하지 못했던 건가,,


앞으로 쓰는 글들은 보다 솔직하게 임하겠다고, 굳게 다짐하면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쓰다보니 궁금한 마음이 든다. 솔직하다는 건 대체 뭘까? 1을 느끼면서 100을 느끼고 있다고 과장하면 솔직하지 못한 걸까. 그리고 지금 내가 솔직한 지 혹은 솔직하지 않은 지 우리는 어떻게 인지할 수 있을까?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기도 하지만, 우주학자 칼 세이건은 ‘모든 질문은 세상을 이해하려는 외침’이라고 말하기도 했으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더 궁금해해야겠다. 나의 진짜 마음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다 보면, 좀 더 솔직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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