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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land May 15. 2023

성장, 그게 대체 뭔가요

누군가가 성장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자신에게 상처를 남긴 과거의 기억을 딛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이야기 속 주인공의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눈물이 절로 난다. 최근에 읽은 에밀리 댄포스의 장편소설 <사라지지 않는 여름>은 부모님의 죽음이 자신의 성정체성 때문이라는 죄책감과 10대라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난 후 찾아온 상실의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찾기위해 분투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멋진 성장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나는 이 소설보다 마음을 흔들 성장소설을 찾기 위해서는 보다 성실히 또 다시 수많은 소설을 읽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해 버렸다.


내가 이 소설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이유는 마지막 장면 때문이기도 한데, 주인공 캐머런은 자신의 과거와 직면하고 나아가기 위해 부모님의 죽음과 관련있는 호수에 찾아간다. 우선 이곳에 와야 한다는 생각에 도착은 했는데, 대체 무엇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는 상태로 한동안 망설이던 캐머런은 ‘정말로 무언가를 끝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통과의례를 성공적으로 치른다. 하나의 의식과도 같았던 장면들을 읽으며, 드디어 한 아이가 과거로부터 벗어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세상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지니게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누군가 성장하는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읽어온 이유는 아마도 나 또한 이 책의 주인공 캐머런 처럼 알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혼자 남은 캐머런이 비디오가게에서 처음 빌려오는 영화가 ‘두 여인’인데, 그 영화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캐머런은 부모를 잃은 아이가 등장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부모의 죽음을 겪은 아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 가르쳐 주는 이가 필요했다고 서술하는 캐머런 처럼 나 또한 궁금했다. 과거를 딛고 성장하는 사람이 어떤 순간을 겪고, 어떤 계기로 달라질 수 있는지 이야기 속에서 혹시나 힌트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다정한 저자가 남긴 힌트를 발견하기 위한 나만의 보물찾기는 성장소설 탐닉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나의 성장은 이야기 속의 성장담과는 확연히 달랐다. 분명 성장소설에 보았던 멋진 성인으로 나아가는 통과의례 장면들을 흉내내는 무언가의 과정을 거쳤는데도 여전히 나 자신은 본연의 나 그대로인 것이다. 이정도면 어디가서 고생 직싸게 해봤다고 말할 수 있겠다 싶은 고난도 겪어 봤고, 나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남들이 보기에는 사서 고생한다 혀를 내두르는 극한의 상황에도 스스로를 몰아넣어 봤는데도 말이다. 겨우 이정도에 내가 달라질 쏘냐! 싶은 뚝심 있는 나와 이쯤되면 달라질 만도 한데? 좀더 해봐?를 외치며 밀어붙이는 대책없는 나 사이를 바삐 진동운동 하듯 오가면서 결국엔 제 자리에 머물게 되고 마는 것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자 한다. 하나의 변곡점같은 성장은 없다. 성장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 또한 멋진 통과 의례를 거치고 나서도 여전히 자기 자신이 형편없게 느껴지는 순간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한 순간의 반성과 깨달음을 통해 의식이 전환이 일어나고 나서도, 여전히 몸은 더디게 정신을 따라올지도 모르는 법이니까 말이다. 내일도 변함없이 게으른 나 자신의 모습에 한탄하기도 하고, 피곤한 육체로 인해 쪼그라드는 너그러운 마음을 붙잡아보려고 애쓰면서 그렇게 하루를 보내야 할지라도, 더는 실망하지 않으려고 한다. 바뀌려는 의지와 멈춰있겠다는 의지 사이에서 진동폭을 조금씩 넓히며 스며들 듯 성장하는 중 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아니 근데 어쩌면, 혹시 내가 아직 진짜 ‘찐’ 성장 이야기를 찾지 못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찐 이야기를 찾기 위한 내 노력이 부족한거라면, 좀 더 열심히 읽어야 할지도. 더 읽다보면 진짜 찾을지도, 진짜 바뀔지도, 진짜 드디어 성장하고 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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