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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land May 29. 2023

불안 사이를 유영하는 법

불현듯 일상을 파고드는 불길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내가 그런 불안감을 주로 느끼게 될 때는 이른 아침 눈에서 떴을 때 이다. 알람이 울린 적 없었음에도 나는 눈을 뜨고 말았으며, 그렇다면 어두컴컴해야 할 나의 방이 묘하게 밝고 평화로우며 어디선가 새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은 바로 그런 때. 심장이 덜컥 내려 앉으며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해 보면 대체로 알람이 울리기 몇 분 전이다. 물론 그런 불안한 마음이 적중하여 꺼진 핸드폰을 마주해야 할 때도 물론 있지만 말이다.


그런 내가 최근 불안함을 느꼈을 때는 공교롭게도 사방 어디에서도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새벽이었다. 저저녁 수영을 마치고 일찍 씻고 누워있다 초저녁부터 잠에 들었다가 새벽에 깨고 만 것이다. 평소라면 졸림을 유지한 채로 화장실을 다녀왔다 다시 머리만 대면 잠에 빠져야 익숙한 내 모습일 텐데,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왜지? 뜬 눈으로 밤을 새우며 뒤척이다 보니 곧 아침이 올 것 같은데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뜻밖에 얻게 된 자유시간, 어차피 다음 날은 휴일이었고 뭐 누워있으면 시간을 보내게 해줄 각종 유머글과 동영상은 인터넷에 잔뜩 대기 중이니까. 눈만 뜬 채로 그대로 누워 엄지 손가락만 쉴틈 없이 움직이는데, 스멀스멀 불안한 느낌이 올라온다. 이 상황이 일상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경고라도 하는 듯한 마음이, 아 혹시 카페인을 많이 마셔서 그런가.


다시 한번 같은 마음이 들었을 때는 또 다시 침대에 누워있을 때였다. 이미 보고 있던 TV프로그램은 끝나 광고를 하고 있는데, 나는 하염없이 핸드폰으로 인터넷화면을 스크롤하고 있었다. 어? 나 분명 나는솔로 보고 있었는데 언제 끝났지 싶은 마음에 퀵VOD를 다시 재생시키려는데, 다시금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거다. 오늘도 커피를 많이 마셨었나 기억을 되살려 보는데, 어, 이건 분명 이상하다. 아직 초저녁, 열시도 되지 않은 시간에 잠도 오지 않는데 잠깐 일어날까 싶어 몸을 일으켜 보려는데, 전혀 일어날 마음이 들지 않는거다. 그러고 보니 어제도, 그제도, 그그제도 수영끝나고 집에 와서는 책 한자 들여보지 않고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잠에 들었던 것이다.


잠시만, 이제 확실해 졌다. 이는 분명 어딘가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입었던 옷은 적어도 보이지 않게 문 뒤편에 걸어두고, 내 공간 중 책상만큼은 말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데 그동안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써왔다. 조금 귀찮더라도 그래야 마음이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을 수년의 자취생활을 통해 배웠으니까. 그런데 책상위에는 오늘 벗었던 옷들이 그대로 쌓여있다. 마른 빨래감도 정돈되지 않은 채로 널부러져 있다. 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심지어 하고 싶은 마음조차 안들고 그대로 누워있는거지? 나 혹시 좀 우울한가. 내가 지금 '우울하다'고 명확한 단어로 문장을 만들어 정의하고 나니 정말로 그랬다는 마음이 든다. 절망적인거 까지는 아닌데 우울한 마음이 드는 상태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렇듯이 어떤 결과에는 그 결과를 불러온 원인이 존재하는 법이니까. 지금의 우울한 마음은 어디에서 왔을까. 조심스럽게 일상을 되감기하며 되짚어 본다. 건강에 문제가 있었을까. 아니다. 꾸준히 수영 강습에 출석하면서 나비처럼 멋진 접영 자세를 취해 보려고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고, 딱 평소 정도로 삐그덕대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러면 회사에서 문제가 있었을까. 물론 회사에서 겨우 기를쓰고 모은 인류애가 급속도로 빠져나간 기억은 있지만, 딱히 내상있는 경험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적당히 바쁘게 일했고, 급히 퇴근해 수영강습에 출석하는 일상이었다. 


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달력어플을 급하게 열어 저장된 일정들을 쭉 살펴보고 나니 알겠다는 마음이 든다. 근래의 일상에 빠진 것은 '사람'이었다. 저녁수영(저수)의 올출을 위해 달리면서 일과 운동외의 사람이 끼어들 틈이 없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할 수도 있는 일과 운동을 반복하는 일상이 나에게는 우울한 감정이 들게 하는 일상일 수도 있다니. 세상에 그거였어? 발이 아파 못걷겠어 신발을 벗어보니, 양말 안으로 들어온 작은 나무 가시를 발견한 순간이 떠오른다. 겨우 그 정도로 고립된 느낌을 받는 나약한 사람의 마음이라니, 그래도 어르고 달래가며 일상의 시간을 매만져 본다. 친구와 동네에서 산책하는 순간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덥지 않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생계나 체력만큼 필요하다니 가끔은 믿을 수 없지만. 근데 필요하다고 신호를 보내니까. 금요일 저녁에는 수영을 제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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