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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land Jun 19. 2023

잠들지 못하는 밤을 위한

요새는 자기 전에 팟캐스트를 듣고 있다. 시작은 반복되는 악순환을 끊어내고자 하는 시도일 뿐이었다. 자기 전에 불을 끈 상태에서 핸드폰을 오래 하다 보니 눈이 피로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어두운 곳에서 밝은 핸드폰 화면을 보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침대 머리맡에 놓인 보조등을 켜고 핸드폰을 했다. 그렇게 보조등을 켜고 나니, 눈은 분명 덜 피로했지만 종종 불을 켠 채 그대로 잠에 들었다. 새벽녘에 잠에서 깨 켜져 있는 조명을 끄는 일이 반복되자 이제는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피로하지 않으면서, 수면에 방해되지 않는 저녁 루틴을 찾다 발견한 것이 팟캐스트였다. 눈을 뜨고 있어도, 감고 있어도 청취에 방해되지 않고 눈이 피로하지도 않다. 맘껏 눈알을 굴리며 잠이 오지 않을 때면 오래도록 귀를 기울이고, 피로한 날이면 듣는 둥 마는 둥 공상을 하다 그대로 잠에 들면 그만이다. 처음에 30분 재생 뒤 자동 재생종료 타이머를 해두는데, 보통은 재생이 끝나기 전에 잠에 든다. 다음 날 아침에 전날 들은 클립을 확인해 보면 시작된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았을 때부터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도 하다. 그럴 때면 어제의 내가 충분히 잤다는 사실에 만족해하며, 기억나지 않는 부분부터 다시 들으면 되니 마음도 편안하다.  


자기 전에 주로 듣는 팟캐스트는 주로 <잠 못 이룬 그대에게>와 <황정은의 야심한 책>이다. 전자는 도서의 일부분을 발췌하여 낭독해 주고, 후자는 책의 저자와 인터뷰나 혹은 책을 주제로 한 3인의 대화가 주를 이룬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의 구절을 정성껏 읽어 주는 목소리는 어릴 적 엄마가 잠들기 전까지 피곤한 기색 없이 반복해서 동화책을 읽어주던 그때를 떠올리게 하며 유독 다정하게 느껴진다. 자신이 기껏 준비한 낭독을 다 못 들어도, 청취자들이 잠에 들기만 하면 된다는 <잠 못 이룬 그대에게>의 다정한 낭독자 ‘지혜의 서재’가 모아 온 구절들이 너무도 좋아 오늘 밤만큼은 다 들을 때까지 버텨보겠노라 다짐하며 눈을 부릅뜨기도 하지만, 어느새 잠에 들고 아침이 오면 다시금 어제 들은 구절을 찾아 다시 음성을 듣곤 한다.


목소리로만 그들과 만났을 뿐인데, 어느새 익숙해져 오랜 지인들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황정은의 야심한 책>에서는 근래에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그동안은 3인이 각자 자신이 추천하는 책을 소개하는 포맷이었는데, 일정 주기로 각자 소개한 책을 셋이 모두 읽고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읽어보고 싶은 책이 선정되면, 그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재생을 미루며 아껴둔다. 못 참고 들어 버리게 되는 때도 있지만, 나 또한 함께 감상을 나누고 싶어 어서 책부터 구하게 되는 것이다. 꾸준히 듣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책을 읽으면서도 이 책의 구절에 대한 그들 각각의 반응이 상상이 될 정도로 그들의 캐릭터가 익숙해졌다. 소설도 에세이도 항상 너무 소중해 아껴읽게 되는 한자님(황정은 작가)의 육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도 너무 반가운 포인트다. 특히나 빵 터지는 상황에서 터저나 오는 ‘으하하하악’ 웃는 웃음소리와 한 호흡 마시고 나서 내뱉는 정리 멘트 ‘그렇습니다’를 듣고 있다 보면 더욱이 글도 말도 가깝게 느껴지며 정말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여겨지는 지경에 이른다.


팟캐스트를 듣다 보면 문득 처음으로 광화문 교보문고를 방문했던 열세 살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새 책에서 나는 종이 냄새와 특유의 교보문고 향이 어우러진 그 공간에 처음 들어섰을 때 나는 압도되었다. 교실 한편에 마련되어 있던 도서실과도, 자주 다니던 동네의 책방과도 확연히 다른 규모였다. 아아, 과연 내가 읽은 책들은 정말 한 줌에 불과했구나, 이 많은 책들을 평생 읽어낼 수 있을지 한없이 두렵고 막막해 눈물이 다 났다. 지금도 새로운 책과의 조우는 버겁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반갑다. 팟캐스트의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오늘 밤도 한 문장 더 나아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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