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inaland Jun 25. 2023

당신은 절망형 인간인가요, 행복형 인간인가요

인간이란 자기 괴로움을 세는 것만 좋아하지. 자기 행복 은 아예 세 질 않아. 만약 제대로만 센다면 누구나 자기 몫이 있다는 걸 알게 될 텐데.

<지하로부터의 수기,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근래에 이 문장을 접하고 다소 놀랐다. 아니,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가 과연 정말 자기의 괴로움을 세는 것만을 좋아한단 말인가, 우리는 늘 소소하게 자기 몫의 행복을 세고 있던 게 아닌 건가? 당장 생각해 보아도 각종 SNS 피드에는 행복한 순간을 포착한 다양한 게시글과 사진들이 모조리 따라잡기 어려울 만큼 전시되어 있었다. 순간을 담아낸 사진과 영상에는 불행이 끼어들 틈이 전혀 없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19세기를 통과한 이 작가는 현대 사회에는 적용되지 못할 통찰을 글로 남긴 것일까, 아니면 혹시 괴로움을 세지 않는 특성은 남들과 두드러지게 다른 나만의 성향 때문인 걸까? 심리검사받는 걸 좋아하는데, 최근에 받아본 성격 검사의 결과지에는 나에 대해 흥미로운 결과치를 숫자로 보여주었다. 동나이대 여성 평균치와 비교하여 나의 응답이 얼마나 비슷하고 다른지를 바탕으로 나의 특성을 분석해 주는 심리 검사였는데, 이에 따르면 나는 남들에 비해 걱정이 없다고 한다!! 살면서 힘들고 괴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을 리는 없을지인데, 유독 불안과 우울, 그로 인한 신체적 호소 임상 척도에 대한 응답치가 낮다는 것이다.


불안과 우울에 대한 응답이 평균치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나는 숫자로 증명되는 ‘걱정 없는 인간형’이었다. 상담사는 결과지를 분석해 주며 나에게 혹시 눈물이 난다거나, 힘들다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걱정이 없다는 것은 정서적으로 안정되었다는 의미이지만, 그와 함께 마땅히 걱정해야 할 문제에 대해서도 감정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상태이거나 혹은 상황을 회피하는 성향일 수도 있기에 이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면서 상담사는 조심스레 물어왔다.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대화가 오가고, 상담사는 무감각이나 회피는 아니니 걱정이 없는 편이라는 결과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고 긍정적인 답변을 내주었다.


사실 검사 결과가 아니더라도 나 또한 내가 남들에 비해 회복탄력성이 상당히 높은 타입이라고 살면서 생각해 왔다. 힘든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남들에 비해 짧은 회복 시간을 거치고 나는 금방 평상시의 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탄성 좋은 용수철처럼. 이는 살면서 마주할 수많은 굴곡을 잘 이겨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큰 장점이다. 하지만 나는 또한 이러한 성향이 나에게 안좋게 작용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금방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만큼,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남들보다 덜 해왔던 것이다.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 대신 쉽고 간편한 인식의 전환-긍정의 힘!-을 요술봉처럼 휘둘러 왔고, 나는 어쩌면 여러 번 더 나아갈 상황에서 안주해 왔을지도 모른다.


내가 줄곧 내 몫의 행복을 주로 주시하고 살아온 것처럼,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처럼 누군가는 자신의 괴로움에 사로잡혀 살아온 이들이 있을 것이다. 행복과 괴로움을 양쪽 저울에 올려 비교했을 때 엇비슷하다면 꾸준히 삶의 당근과 채찍으로 활용하기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균형을 누구나 쉽게 손에 넣을 수는 없는 법이다. 괴로움의 힘이든, 행복의 힘이든, 감정을 또 하나의 동력 삼아 우리 모두가 너무 주저앉지 않기를, 또 너무 떠오르지 않고 현실의 땅에서 발 붙이고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잠들지 못하는 밤을 위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