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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land Jul 17. 2023

십년지기 친구들과 쓰는 교환일기

교환일기를 쓰기로 정했다.


참고로 처음 쓰는 교환일기는 아니다. 이미 중학생 때 나는 친구들과 교환일기를 썼다. 그 당시 우리가 선택한 일기장은 정말로 노트에 자물쇠를 달 수 있는 형태였는데, 누군가가 우리의 비밀에 접근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일기장에는 딱히 비밀인 내용은 없었다. 치명적인 비밀을 털어놓기에 우리의 일상은 무난하고 시시했고, 그럼에도 우리의 일상을 좀 더 특별하게 수사하고 싶은 욕망은 가득한 십 대였다. 매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무슨 일기까지 필요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나눴다.


친구들과의 소통에 있어 편지나 메일이 주를 이루던 시기는 지났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을 매일 만나 교류했고 뜨문뜨문 문자를 나눴다. 40글자 안에 가득 담아 전달하는 마음은 항상 부족했다. 나의 알도 부족했고, 칸도 부족했고! 우리는 내일 만나는 그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오늘 못 나눈 이야기는 내일 만나서 나누면 되니까. 하지만 이제는 매일 만나지 않아도 나는 그들과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 카카오톡으로 수시로 일상을 나누고, 사진을 주고받으며 더 이상 묻지 않아도 SNS를 통해 상대방의 하루를 속속들이 알 수 있는 지금 와서! 우리는 교환일기를 쓰기로 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느끼는 친밀감은 우리가 그들에게 들이는 시간의 양과 직접적으로 연관 있다고 하니까 말이다.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매일같이 만나 스터디를 하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겠다며 우여곡절을 겪어내던 그 시기와 지금은 만남의 빈도가 너무도 당연히 줄어들었다. 일상을 지켜내기 위한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 속에 일정 시기마다 꾸준히 만남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쩌면 약간의 명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분기별로 교환일기장을 전달해야 하니까 먹고살기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어 만남을 주선해야 한다는 정도면 어떨까.


로빈 더바의 책 <프렌즈>에 나온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어떤 사람을 만나 지인이 되었다가 ‘가벼운 친구’가 되기까지는 그 사람과 45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고 한다. 가벼운 친구에서 유의미한 친구가 되기까지는 3개월 동안 50시간을 함께 보내야 했고, 절친한 친구로 가기 위해서는 100시간을 더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친구 범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 동안 날마다 2시간 가까이 투자해야 한다. 우정의 토대일 수밖에 없는 시간을 쌓아가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수단이 바로 ‘교환일기장’이다.


규칙은 아주 간단하다. 네 명이 분기별로 만남을 갖고, 다음 타자에게 교환일기장을 전달한다는 것. 얼마나 써야 하는지, 어떤 내용을 담을지도 자유다. 필요한 것은 끝나지 않는 이어달리기를 하겠다는 결심뿐. 대단한 기록이 되길 기대하겠지만 아마도 우리가 담아낼 이야기는 10대의 그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상의 뻔한 반복과 소소한 변주, 그 안에서 끊임없이 요동치는 마음들이 담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기록이 특별할 수밖에 없는 건 서로의 삶을 가까이에서 응원하고 지켜봐 주는 누군가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니까.


<우리들의  타임> 다큐멘터리를 틈틈보곤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할머니들이 매년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타임을 나누는 모습을 수십  동안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세월이 점차 흐르며  타임에 참석하는 인원은 점차 줄어감에도 그녀들은 꾸준히 차 한잔 나누는 시간을 갖으며 자신들의 일상을 공유한다. 우리의 일상 또한 매년 달라지겠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보내온 시간은 일기장 속에 담아낼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우선 하루빨리 일기장을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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