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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land Jul 24. 2023

이번에는, 해피엔딩

김혜진 작가의 <미애>를 읽고

해피엔딩이나 열린 결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고난을 겪고 있던 주인공이 수많은 현실의 제약을 극복하고, 얼렁뚱땅 해피엔딩을 맞이한다는 사실이 현실에 대한 기만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어설프게 갈등을 봉합해 버리는 것보다는 지지부진한 일상일지라도 계속되는 것이 이치에 맞는 거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희극보다는 비극을 주로 읽고, 기쁨보다는 슬픔의 삶의 동력으로 활용했다. 이십 대 초반이었다.


나에게 그 시절은 어떠했는가. 대학생이라는 신분에 맞게 적당히 성실했고, 또 어느 정도 나태했다. 수업은 꼬박꼬박 들으러 갔지만 그렇게 열의를 다하지 않았고, 주로 친구들과 만나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누며 그러고 나서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렇게 책을 많이 읽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아 했으며, 그럼에도 어느 순간 누군가가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랐던 것 같다. 내가 매우 평범하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과 그럼에도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의 사이에서 요동치면서.


해피엔딩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도 어쩌면 비슷한 맥락에서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보다 해피엔딩을 맞이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예감 속에서 내가 먼저 ‘해피엔딩이 불가함’을 외치며 나와 내가 맞이한 현실을 방어해 왔던 것이다. 해피엔딩만을 바라는 건 매우 순진한 태도이고, 우리는 우리에게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인생의 갖은 불행에 대비해야 한다고 나는 미리 스스로를 단련시켰다.


그랬던 나였기에 ‘삶에 기대를 품는 것이 번번이 자신을 망친다는 결론에’ 이르렀던 여자가 다시금 희망을 품는 소설 속 이야기를 매우 눈여겨보며 읽었다. 김혜진 작가의 <미애>라는 단편 소설이다. 모든 불행이 그러하듯, 그녀에게 닥친 현실의 불행은 너무도 예측가능하지만 도저히 빠져나가기는 어렵다. 희망을 품고 나아가기에 현실은 비정하고, 하나의 불행을 헤쳐 나가면 어느새 또 다른 불행이 닥친다. 아예 희망을 가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아왔는데, 미애는 결국 번번이 실패하고 한 줌의 희망을 품는다. ‘눈덩이처럼 커진 희망 아래 깔려 죽을지도 모른다고 자신에게 수시로 경고하는 것만은 잊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그녀가 아무런 희망의 신호 없는 현실 속에서도 조심스레 따뜻한 빛이 있는 희망을 향해 한발 내딛어 보고 마는 모습을 나는 매우 응원하며 지켜봤다. 그녀가 희망을 품게 된 계기가 합당했는지, 그녀가 본 게 정말 실낱같더라도 빛줄기이기는 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설사 흰 실뭉치를, 조약돌에 반사된 빛을 희망으로 착각한 거라 해도 말이다. 중요한 것은 ‘사는 동안 그런데 -희망 같은 게- 절실하지 않은 때가 한 번도 없었다는 걸’ 미애 본인도 모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해피엔딩일 거라고, 희망을 품은 여자의 모습을 읽으며 나의 삶과 운명,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생각한다. 이번에는 희망을 동력삼아 보겠다는 결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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