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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land Sep 25. 2023

같이 가면 멀리 갈 수 있다

같이 가면 멀리 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건 대학교 3학년 때이다. 다가오는 여름방학을 고대하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이번 방학은 꼼짝없이 방구석에서 하릴없이 빈둥대며 여름을 낭비하고 말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있을 때, 교내에서 공모전 공고를 발견했다. 그 당시 기업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해외탐방공모전이었다. 3인 이상이 팀을 이루어 신청을 하고 당선이 되면 인당 200만 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공고 내용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그 당시 우리는 넘치는 의욕을 분출할 창구가 필요했다. 정말 어디든 보내주기만 한다면 그곳이 우주일지라도 가겠다고 선뜻 나섰을지도 모른다. 아프리카의 할리우드를 빗대 ‘날리우드’라 불리는 나이지리아의 폭발적인 영화생산량을 이야기하며 아프리카의 영화 시장의 가능성을 직접 보고 오겠다는 내용의 지원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제와 가장 맞는 나라였던 나이지리아는 치안상의 이유로 빠졌고, 에티오피아에서 케냐, 탄자니아, 잠비아를 거쳐 남아공까지 육로로 종단하는 긴 여정이었다.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공모전에 당선된 이유는 나라 선정이 8할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어쨌든 우리는 다행히 40여 일의 긴 여정을 떠날 수 있었다. 아아, 함께 하니까 이렇게 지구 반대편까지 올 수 있구나, 깨달았다.


직장인이 된 지금은 그때처럼 훌쩍 먼 곳으로 떠나긴 아무래도 좀 어렵다. 이주 내외의 연차를 모아 겨우 짬을 내서 다녀올 수 있을 뿐이니 더 이상 “할 것도 없는데…”가 통하지 않는다. 대학생 때는 우리 어차피 할 것도 없으니 뭐라도 하자는 누군가의 제안은 딱히 거절할 이유도 딱히 없었다. 제안을 수락했을 때 매몰비용이 적은 것이다. 시간이라는 자본은 넘쳤고, 돈은 쓰기 전에 이미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렇지 않다. 어딘가로 가기 위해 연차를 내는 것 자체가 돈이고, 시간일 뿐 아니라 매우 한정되어 있기에 “아주 잘” 써야 한다. 남은 350일을 버티기 위해서는 마치 천국에 온 것 같은 환상적인 15일이 필요한 법이다.


그럼에도 시간이 남는 주말이면 가끔씩 재밌는 상상을 한다. 혼자면 재밌는 상상으로 끝났을 일도 사람이 모이면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까지는 아니어도 파주 임진각까지는 갈 수 있지 않을까? 혹시 너무 가깝고 평이한 곳으로 느껴진다면 교통수단의 변화를 줄 수 있다. 차로 간다면 언제든 금방 갈 수 있는 목적지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가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무료한 주말, 자전거를 끌고 동네 그릭요구르트 가게에서 만나 아보카도 샌드위치와 홍시 요구르트로 배를 채우던 MBTI P인 친구 둘이 오후 느지막이 내린 결정이다.  


항상 그렇듯이 즉흥적이라  어떤 참고할 루트도 있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저 달렸다. 최단거리로 안내해 주는 네이버 지도도 믿을  없었다. 실제로 네이버 지도를 켜도 달리다 자동차들과 함께 내달리게 되어  번을 돌아 나와야 했다. 아니, 자전거 도로로 가고 싶다고! 그렇게 겨우 찾은 공릉천을 따라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페달을 밟았다. 난생처음 달리는 이 길은 정말 함께 와서 달릴 수 있었다고 몇 번이고 되뇌면서. 지뢰 찾기를 하는  같은  웅덩이 가득한 비포장도로에서 튀어 오르며 엉덩이 근육의 통증을 느끼고, 일몰 시간 전에 안전한 장소에 도착하기를 염원하면서 말이다. 결국 일몰 시간이 삼십  지나고 우리는 돌아올  있었고, “다음엔  가보자고다짐하며 짧은 모험을 마무리했다.


같이 가면 멈추지 않고 조금 더 멀리 갈 수 있다. 그게 겨우 반걸음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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