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A'- B- A
일주일에 보통 3일은 요가원에 간다.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요가를 굳이 계속 요가원에 가서 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지켜봐 주는 선생님이 있고, 호흡을 나누며 함께 동작을 이어가는 요기니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근래에는 하타 요가 수업을 주로 듣고 있는데, 한 동작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아쉬탕가나 빈야샤에 비해 길다. 안 되는 동작에서 머물러 있다 보면 애써 호흡을 하다가도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서 동작을 풀어내고 싶기도 하다. 혼자라면 분명 슬쩍 여러 핑계를 들이밀며 빠져나갔을 시점에도 수업 중에는 어림도 없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호흡하다 보면 동작이 조금은 자연스러워지고 그러다 보면 분명 안되었던 자세가 성큼 다가와주기도 하니까 그만둘 수는 없게 된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 마지막 수업을 들으며 나는 나의 몸에 변화가 있다고 느꼈다. 허벅지 햄스트링이 당겨 잘 되지 않던 자세 ‘파리브리타 지누 시르사사나’를 편안하게 완성해 낸 것이다. 이건 도약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A- A’를 넘어 드디어 B에 도달한 것이다. 길고 지난한 수련의 결과 마주한 퀀텀점프였다고 자찬하기를 일주일. 연휴를 마치고, 돌아온 수업 시간에 나는 절망했다. 원래 가능한 동작이었다는 듯이 자연스러웠던 그 자세는 성공했던 기억만 남긴 채 내 몸과 멀어진 것이다. A- A'- B를 지나 다시 A.
사실 A- A'- B를 지나 다시 A로 돌아온 경험이 처음은 아니었다. 거의 모든 결심의 과정이 그래왔다. 현실의 내 모습이 있다(A).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변화를 모색한다(A’). 궁지에 몰린 상태에서 조금은 바뀐다(B). 이 모습을 유지해야겠다는 마음도 잠시, 방심한 사이 다시 돌아온다(A). 가장 자연스러운 본연의 모습으로. 자연스러운 악곡의 형태처럼 리드미컬한 복귀.
하지만 삶은 이어지니까 계속 바뀌려고 하다 보면 언젠가는 B까지는 못 가도 A’에서 멈출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A- A’- B- 그리고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