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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land Dec 04. 2023

고쳐쓸 수 없는 이야기

너에게도 혹시 있을까.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시간을 돌려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가능하지 않은 가정을 반복해서 하면서 후회하는 순간이 혹시 너에게도 있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너를 용서할 수 있을지도 몰라.


십여 년 전, 그날 나는 잠에 빠져 있었지. 안방에서 다급하게 엄마를 외치는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는 119에 전화를 하고 있었다. 곧 119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구급차를 타고 우리는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의사는 건조한 목소리로 뇌출혈이라는 낯선 병명을 내게 전했다.


너는 몰랐겠지만, 나는 지금도 가끔 이미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그날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정확히 말하면 그 전날 밤으로.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눈물과 콧물을 줄줄 흘리며 끊임없이 후회했던 기억 만이 선명하다. 엄마가 쓰러지기 전날,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엄마에게 불안을 표출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 당시 나는 불안했다. 눈을 가리고 걷고 있는 것 같았고, 가끔 내 근처에 손이 닿는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했다. 네가 지금 내 앞을 가리고 있다는 듯이 맹렬하게. 그리고 그날 밤은 엄마였다, 내가 마주친 이는.


밥도 못 먹고 늦은 시간 집으로 귀가한 나는 짜증을 냈다. 밥상에는 카레가 놓여 있었다. 야채를 다지고, 분말을 넣고, 오래도록 끓여 밥상에 내어지기까지 그 정성 어린 시간이 그때의 내게는 헤아려지지 않았다. 먹는 둥 마는 둥 방으로 들어갔다. 카톡이 울렸다. 밖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근황을 물어보며 힘내라는 엄마의 메시지였다. 새벽에 잠에서 깨 카톡을 본 나는 답장을 보냈다. 뭐라고 보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머쓱해했는지, 없던 일로 무마하기 위한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는지는. 그리고 잠에 들었다. 그때 안방에 들어갔어야 했다. 선잠에 들었을 엄마의 손을 한번 잡았어야 했다. 그날 내가 보낸 카톡 메시지 옆의 숫자 1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이제 네가 돌아가고 싶었을 그 순간이 언제일지 상상해. 나는 아직 너를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니까, 이 상상에는 비약과 오해가 가득해도 어쩔 수 없겠지. 나는 이 이야기의 창조자고 너가 입을 열지 않는 이상 너는 너 자신을 방어할 순 없어.


너는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새벽녘 반복되는 악몽으로 인해 꿈에서 깬 너는 핸드폰 메세지함을 살펴보며 결심했다. “오늘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시작은 10만 원이었다. 너는 친구에게 10만원을 빌렸다. 용돈이 들어올 때까지 딱 일주일만 버티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너의 아버지는 방에서 빈둥대는 너에게 더 이상 용돈을 줄 수 없다고 선언했다. 친구에게 줄 10만 원을 구하기 위해 또 다른 친구에게 10만 원과 그다음 일주일을 살아가기 위해 5만 원을 빌렸다. 빚은 점점 늘어만 갔다. 10만 원. 15만 원. 20만 원. 돈 때문에 사람을 잃을 수는 없지.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 너는 돈을 빌렸고, 그리고 결국 너는 모든 사람을 잃었다.


내 상상 속에서 너는 더욱 절박해진다. 안락한 집에 있던 너에게 무슨 돈이 왜 필요해졌을까. 내가 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큰 명분이 필요하다. 나는 신문의 사건사고면을 살피며 주인공의 자리에 너를 세운다. 코인을 하다가 조금만 더 넣으면 한탕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리볼빙 서비스에 가입한 이후 손쓸 틈 없이 빚이 늘어나는 모습을 바라봤을까, 여자친구가 임신을 해서 수술비용이 급하게 필요했을까. 이 이야기의 최종본에서 너는 중고나라에서 현금 돌려막기를 하다 경찰에 신고당했고, 누구에게도 너의 상황을 알리지 않고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필요했어.


다시 이야기는 진행된다. 너는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무언가를 떠올린다. 용무늬가 그려져 있는 도자기. 집에는 도자기가 있다. 독일의 장인이 손으로 빚어 만든다는 브랜드의 도자기 세트가 베란다 창고에 놓여 있다. 너에게는 그 가치를 알아볼 눈이 없다. 아는 것이 있다면 그릇을 사랑하는 엄마가 그 브랜드의 도자기를 매우 아꼈다는 것, 그러니 돈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것. 너는 당근에 글을 올렸을까, 수입업자에게 연락을 했을까. 아무도 집에 사람이 없는 시간을 너는 어떻게 맞췄을까. 하나하나 신문지에 싸여 있던 그 티팟과 도자기와 커피잔을 너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들여 옮겼을까.


그런데 나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멈추고 만다. 나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을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아는 주인공은 장을 보고 돌아오는 엄마의 짐을 들어주러 나가고, 엄마가 탈 자전거의 체인을 미리 닦아두곤 했다. 네 행동과 말이 담고 있는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런 주인공이 엄마에게 비수가 될 수 있는 행동을 해 나가는 과정을 나는 서술할 수도 없다. 도자기가 사라진 집에서 너는 어떻게 가족들과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잠을 잤을지 나는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다. 너는 무섭도록 평소와 같았다. 모두가 빈 공간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너는 고개를 들지도 물음에 답하지도 못했고 집을 나섰지.


내가 보낸 카톡 메시지 옆의 숫자 1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나에게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나는 속절없이 무력했고, 그럼에도 하루는 이어졌다. 시간을 되돌릴 수도, 눈을 감고 있는 엄마를 흔들어 깨울 수도 없던 지난한 시간 동안 숫자 1이 사라지는 순간을 상상하며 일상을 살아낼 뿐이었다. 엄마가 만든 카레를 홀로 꺼내 밥상을 차리고, 옷을 입고, 사람을 만나고, 과제를 하고, 면접을 보고, 집에 오면 까무룩 잠에 들었다. 엄마가 의식을 회복하고 1이 사라졌을 때 나는 비로소 안도했다. 그 이후의 삶은 덤이었다.


고쳐쓸 수 없는 이야기 앞에서 나는 너를 이해하고 싶다. 너를 이해하고 싶지만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느낀다. 너를 여전히 사랑하지만 그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쯤 너는 후회하고 있을까. 되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끊임없이 떠올리며 이야기를 다시 쓰고 싶어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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