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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land Dec 11. 2023

사랑에 빠지기에 충분한

요즈음 누군가를 만나서 공통 화제를 찾아야 할 때면 <나는 솔로>를 보냐고 묻는다. 매주 수요일 밤이면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기도 하고, 캐릭터를 알기만 한다면 쉽게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설사 보지 않았을지라도 <나는 솔로>에 나온 다양한 인물상의 에피소드를 전해주다 보면 대화는 금세 화기애애해진다. 스몰토크에 취약한 나에게는 정말 고마운 프로그램인데, 이번 17기를 보면서 출연자들이 나눈 대화 속 한 마디가 마음에 박혔다.


17기의 자기소개가 끝나고 여성 출연자들끼리 장거리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말한다. “사회에서 만났으면 안 될 이유를 찾았을 거 같은데, 여기서는 맞는 부분을) 찾게 된다 “고 말이다. 이제야 그동안 나왔던 출연진들의 행동과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세상에 80억 인구가 존재하고 그중에 나와 맞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으며, TV프로그램을 통해 인연을 만나기가 쉽기만 하겠는가. 분명 그 안에서 만나지 못할 수도 있고, 만약 나와 잘 맞지 않는 부분이 보인다면 포기할 수 도 있으련만! 만약 그들도 프로그램 안에서 만난 출연자들을 소개팅 등을 통해 만났다면 보다 쉬이 관계를 정리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은 역시 나랑 안 맞는 것 같네? 에이, 이번 소개팅도 아닌가 보다,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주일이란 시간을 오롯이 썼다! 방송이 나가고 나면 세상 모두가 내가 짝을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든 목적이 짝을 만나는 것이 전부인 공간에 들어가자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이 나와 맞을 수 있을 만한 부분을 어떻게든 찾기 위해 한 명 한 명을 보다 눈여겨보았던 것이다. 오랜동안 품어왔던 의문, 어떻게 전쟁터 같은 저곳에서 사랑이 피어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그렇다면 혹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인생도 우리는 사랑할 수 있을까. 이왕 태어나서 살아가는 있는 이상 얼렁뚱땅 정신없이 굴러가고 있는 이 세상도 나와 맞는 부분이 있을지 관심을 기울여 찾아본다면 또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이런 마음먹기만으로 앞으로 닥칠 고된 삶의 풍파를 막아주거나 과거의 잘못된 선택들로 인한 결과를 무마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간을 내어 한번 더 살펴보고자 마음먹는다면 말이다. 커피나 음악, 대화, 빛, 문장, 가까스로 발견한 작은 무엇을 통해 세상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주말에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나를 바라보는 애정 어린 눈빛과 따뜻한 말들에 위로받았다. 아침에는 내가 좋아하는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기 위해 걸어갔다. 굳이 돌아가야 하는 곳이지만 커피 향을 떠올리면 설렜다. 내가 들어선 커피숍에는 딱 한 자리가 남아 있었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였다. 내가 읽으며 밑줄 그은 책 속 문장을 우연히 인스타그램 새 게시글에서 발견했다. 혼자서 책을 읽고 있었을 뿐인데, 어느새 연결되었다. 겨우 이 정도인데, 겨우 이 정도로도 단단해질 수 있었다. 사랑에 빠지기에도 더 없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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