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에 들어온 지도 벌써 이년이나 되었다. 다시 본가에 들어가 살겠다는 결심을 내보였을 때 다들 걱정이 가득한 조언의 말들을 건네왔다. 혼자 살다가 다시 가족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그 전에 살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를 거라고. 우려섞인 말들에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기어코 본가에 들어온 것은 아마도 마지막 가족들과 함께 살던 그 시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몇 년 동안 비어져 있던 내 방은 거의 창고와도 다름없었다. 어느새 비어있는 바닥 곳곳에는 발 디딜 틈 없이 각종 박스와 캐리어, 물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다시 공간을 비워내고, 그 안을 나의 공간으로 만드는 과정은 예상보다 오래 걸렸지만 꽤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그 곳에 내 공간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전세 사기에 대한 걱정으로 등기부등본을 떼어 보며 스트레스 받고, 새집증후군으로 인해 피부병이 생기던 자취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무척이나 컸다.
막상 돌아오고 나니 걱정이 무색하게 즐거웠다. 내가 바라고 있는 것들이 바로 이곳에 있다는 생각에 들뜨기도 했다. 따뜻한 방, 두런두런 들리는 말소리, 현관문을 열기도 전부터 새어져 나오는 음식내음, 나에게 익숙한 산책길, 운동장, 근황을 나누는 이웃의 존재, 술마시고 늦게 들어올 때면 마중 나오는 동생, 매번 갈 때 마다 질리지 않는 호수공원을 걸으며 느끼는 계절의 변화, 그리고 내 방. 생활의 공간과 철저히 분리된 내 방 책상에 앉아 나는 이 곳이 내 방이구나 실감했다.
그럼에도 슬슬 나는 내가 다시 독립된 주체가 아닌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들어왔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월요일 저녁에는 분리수거를 위해 쓰레기를 내버려야 했고, 일요일 아침에는 아무리 늦잠을 자고 싶어도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어야만 했다. 가족 구성원의 걱정이 내 걱정이 되기 까지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동생이 품고 있는 고민을 아빠의 고민을, 엄마의 고민을 보다 세세하게 알아갔고 전보다 더 오래 함께 고민했다.
한 집에 산다는 것은 함께 4인5각 달리기 경기의 선수로 등판하는 것과 같다. 좋든 싫든 들어온 이상 왼 발을 먼저 내딛을 지 오른 발을 먼저 내딛을 지 상의해가며 조금 불편할지라도 합을 맞춰야 하는 것이다. 우선 들어온 이상 핫둘핫둘,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내딛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