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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land Nov 06. 2023

보내주는 연습

핸드폰을 4년 만에 바꿨다. 어디엔가 물건을 오래도록 보관하기 대회라도 열린다면 1등은 자신 있는 나에게 핸드폰을 바꾼다는 것은 쉬운 미션이 아니었다. 여전히 아직 완전히 바꿨다고 하기는 어려운데, 아직 이전 폰으로 카톡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핸드폰 액정이 깨진 지도 벌써 한 달은 지났지만 쉬이 손에서 내려놓기 어렵다.


내 방구석에는 어린 시절부터 모아둔 추억 보관함이 있다. 처음 사용한 핸드폰부터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들, 그리고 어릴 때 공부했던 노트들이 그대로 담겨 있는데 몇 번의 이사를 거치는 과정에서도 꾸준히 살아남아한 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 학창 시절에 중간고사를 준비했던 노트나 몇 장 쓰지 않은 다이어리등을 좁은 방에 꾸역꾸역 모아둬서 뭐 할 거냐는 가족들의 원성 어린 비난을 종종 받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버리려는 시도는 몇 번이나 허탕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버리기를 포기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더 이상 새로운 물건을 들여놓을 자리가 없다. 대체 지금 내 방을 꽉 채운 물건들이 무엇인지 확인한다. 내 방에 있는지도 몰랐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다시 들여다보지 않을 것만 같다. 어릴 때의 별명이나 하찮은 말들로 도배되어 꾸깃꾸깃해진 쪽지들을 내가 언제 또 들여다보고 앉아있을 것인가. 그래, 이 정도 마음이 들면 버려야겠지 하는 마음에 박스를 하나 들고 온다. 다 버려야지 하고 하나 둘 담기 시작하는데, 스멀스멀 다른 생각이 든다.


그런데 설레지 않는다고 내가 가지고 있는 사물에 담긴 가치가 줄어드는 것일까? 지금의 나에겐 소중하지 않은 물건일지라도, 그 당시 언젠가 이 물건을 사용하던 당시의 나에게는 매우 가치 있는 물건이었다. 과거의 기억이 점점 더 잊혀 가는 가운데, 이 물건의 존재는 혹시 과거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방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는 죄목으로 쓰레기통에 가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처사가 아닐까, 까지 생각이 닿고 나면 버리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든 주섬주섬 주워 다시 원래의 자리에 두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용도를 다 할 때까지 꽉꽉 채워 쓴 나의 고장 난 핸드폰들은 쓰임을 다하고 난 뒤에도 방 한편에 본인의 입지를 다지어 오며 오늘날까지 오고 말았다. 이러다 나중에 좁은 방 한가득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로 채우고 살아가며 끊기지 않고 따라오는 생의 기억에 괴로워하는 미래의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우선은 천천히 연습해 봐야겠다. 버리는 일에도 연습이 필요하니까. 쓰임이 다한 사물도, 소원해진 관계도, 정리되지 못해 펼쳐진 마음도 어느 정도 보내주는 연습도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이전 핸드폰의 깨진 액정으로 쓴 이 글을 마무리한다. 내일은 새 폰에 정을 붙여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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