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브레드 피트의 젊은 시절 모습이 담긴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좋아한다. 거칠지만 아름다운 1920년대 미국 몬태나 주를 배경으로 목사인 아버지와 두 아들이 등장한다. 첫아들은 안정적이고 성실한 삶을 살아가고, 자유분방한 영혼을 지닌 둘째 아들은 도박에 빠져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갑작스레 맞이한 아들의 죽음 앞에서 아버지는 인생의 마지막 설교 날 말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해야 합니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할머니의 장례식 3일장의 마지막 날 화장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한 방에 가족들이 모여 있었을 때, 영화 속 설교 장면이 떠올랐다.
화장은 30여분 걸린다고 했다. 유족들은 대기실이 있는 곳으로 안내받았고, 6평 원룸 크기의 작은 방에 열댓 명의 가족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한낮이었지만 빛이 들지 않아 어두웠고, 아무런 가구도 없이 가족들은 벽을 등 대고 기대앉아야 했다. 화장터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오열했던 가족들은 지쳤고 다들 말없이 앉아 있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할머니는 무겁고 단단한 관 안에 자리했고 비록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할머니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화장이 끝나면 단 한 명이 두 손으로 들 정도의 무게만을 지니게 될 것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한 사람의 부재를 실감해가는 과정이었다.
모두의 무거운 침묵을 깬 건 이모의 외침이었다. “왜 옷을 나한테 사달라고 한 거야? 나만 빼고 갈 거면서.” 상황을 모르던 나머지는 의아해했고, 이모의 형제들은 갑작스레 울분에 찬 이모를 달래기 시작했다. 추후에 들어본 상황은 이러했다. 할머니가 이모에게 옷을 사달라 했고, 이모는 생전 부탁하지 않는 할머니가 무언가를 부탁했다는 사실에 기뻐 옷을 사 보내 드렸다. 옷이 도착하고 나서, 이모는 할머니에게 전화해 옷이 마음에 드냐고 물어봤고, 할머니는 자신이 지금 그 옷을 입고 큰 아들, 딸과 함께 여행을 가고 있다고 신나서 자랑했다는 것이다. 자신을 빼고 여행을 갈 거면서, 자신에게 옷을 사달라고 했던 사실이 서운했던 이모는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이모는 화가 나 보이기도 했지만, 매우 슬퍼 보였다. 아마 이모는 그 사건이 있던 후에도, 그 서운함을 풀지 못했을 테고 끝까지 자신의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은 가끔 우리를 매우 좌절하게 만든다. 물론 이는 이모와 할머니의 관계에 있어서 단편적인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할 것이다. 모든 모녀 관계가 그러하듯 사랑하는 만큼 서로에게 많이 상처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가끔은 겨우 이해에 다다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순간 포기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모가 할머니를 사랑했던 것은 분명해 보였고, 더 이상 이해를 위한 대화를 시도할 수 없는 그 상황에서 나아갈 길 없는 애정은 슬픔으로 터져 나왔다.
소설가 김금희는 책 <사랑 밖의 모든 말들>에서 말했다. “할머니와 가까웠든 가깝지 못했든 할머니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동일하게 찾아든 할머니의 부재, 그 공평한 부재 속에서 비로소 ‘나의 할머니’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라고 말이다. 마지막까지 이해할 수 있었든 이해할 수 없었든, 모두에게 찾아든 그 공평한 부재 속에서 모두가 ‘나의 엄마’에 대해, ‘나의 할머니’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