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트라우마는 무엇인가요?

트라우마 러브 매칭 연구소

by Ninaland


“The extra mile”은 10쌍의 이혼한 부부가 팀으로 참가하는 미국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무인도와 같이 한정된 공간에 모인 10쌍의 부부는 ‘출발 드림팀’보다 격렬한 각축전을 거쳐 단 1쌍의 부부만이 승리를 쟁취하고 상금 1억을 받게 된다. 승리를 향한 가학적인 게임이 난무하여, 이혼한 부부들이 협력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감정 다툼, 다른 참가 부부와의 묘한 기류 등은 다소 선정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 프로그램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승리를 차지한 부부가 얻게 되는 상금 1억원은 그들의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비로소 받을 수 있으며, 아이의 대학 등록금이라는 용도로만 쓰이게 된다는 점이다.


프로그램의 포맷 수출을 위한 방송 포맷 시장에서 소개된 자료를 통해 접한 프로그램이라 짧은 영상 클립과 해당 포맷에 대한 소개가 내가 이 프로그램에 대해 아는 전부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런 프로그램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종종 상상하게 된다. 혹시 나 때문에 부모님이 이혼한 건 아닐까 마음 졸이며 끙끙 앓던 10대 청소년이 엄마 아빠가 나온 이 프로그램을 보는 장면을 말이다. 자신을 위해 협력하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며, 적어도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만은 명확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상상하게 된다. 같은 마음의 상처를 지니고 있는 아이들이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유대감을 쌓아가는 장면을 말이다.


아이들뿐 아니라 지구 상의 모든 존재는 자신만의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 웃으면서 잘 지내고 있다가도 문득 피어나는 과거의 기억으로 하루를 망치게 된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혼이나 성폭력, 죽음 등 개인의 인생에 극적인 영향을 주는 경험뿐 아니라 유년 시절의 단편적인 기억이나 주변 사람과의 사소한 대화 등에서 비롯된 상처 또한 트라우마로 남기에 충분한 상처가 될 수 있다. 우리 모두 지니고 있는 이러한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이쯤에서 또 한 번 상상을 해본다. 국가적 차원에서 <트라우마 러브 매칭 연구소>를 운영하는 것이다. 신청한 개개인이 트라우마를 극복할 때까지 누군가를 매칭 시켜 준다면 어떨까. 나의 트라우마에 대해 들어주는 사람, 같은 트라우마를 지닌 사람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사랑을 만들어 낸다면 혹시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사랑이 꼭 이성 간의 사랑일 필요는 없겠다.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주인공들처럼 서로가 지닌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며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는 경우 또한 물론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도 적극 권장할 바이지만, 성별, 나이, 국적 불문하고 심지어 인공지능과의 관계 맺기도 사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her”의 주인공 테오도르와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가 해변가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잊을 수 없다. 그의 곁에는 사만다가 서 있지 못했지만 그들의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나는 사만다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의 존재는 이처럼 인류애적 사랑으로 트라우마 극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득 궁금해진다. <트라우마 러브 매칭 연구소>의 1호 상담자가 만약 나라면 나는 누구와 매칭이 되어 나의 트라우마를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혹시 국가적 차원에서 수많은 연구진들이 프로그램을 만들어 낸다면 과거의 인물이나 소설이나 영화 속 등장인물과도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해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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