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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lee May 26. 2024

[태국에서 살아남기] 우선, 나.

1.  어쩌다가 태국인가


나는 간호사였다. 과거형을 사용했다는 의미를 여러분 역시 잘 이해하리라 믿는다. 취업을 위해 떠밀리듯 간호학과에 왔고, 나름 괜찮은 성적과 스펙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첫 직장을 대학병원으로 결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가늘고 길게 일할 수 있는 길을 택하겠노라 생각했다. 그렇게 종합 병원에 이어 요양 병원, 코로나 병동을 전전하던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개중 다행이었던 것은 외국어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으며, 다른 직무로의 전환 가능성도 항상 열어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간호사라는 직업에 염증을 느꼈다. 전혀 업무 강도가 세지 않으며, 아픈 환자들이 거의 없는 병원에서조차 간호사들은 서로의 사소한 실수를 찾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반드시 말을 꺼내야만 직성이 풀렸다. 단순한 전달 오류에 있어서도, 환자에게 해가 가는 건 전혀 없었음에도 부장이라는 사람이 내 눈 앞에서 같은 부서 동료들에게 말을 꺼냈을 때 나는 결심했다. 아, 나는 평생 이 집단에 정을 붙일 수 없겠구나.


그날부터 구인구직 사이트를 매일같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반드시 이 집단을 탈출할 것이며, 길게 봤을 때 앞으로의 경력에도 도움이 될 만한 이직처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취업 시장이 얼어붙은 상태였고, 매번 서류 심사 단계에서 떨어지기 일쑤였다. 그 횟수에 비례하여 내 자신감을 뚝뚝 깎여만 갔다. 심지어 '왜 간호사가 지원했는지 궁금해서 불러 봤다'는 면접관도 있었다. 결과는, 당연히 불합격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외국계 기업의 공고문을 보게 되었다. 외국 지사로도 지원이 가능하다고 나와 있었으며, 당시에는 방콕 지사에서 근무할 인원을 모집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게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 그 어떤 때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지원했고, 합격할 수 있었다. 한국을 벗어나 한 번쯤 살아보는 건 내가 품고 있는 오랜 꿈 중 하나였다.



2. 왜 태국인가


이제 슬슬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올 차례이다. 왜 방콕이었는가, 라고 묻는다면 "사람들이 좋다고 해서."이다. 너무 간단하고 단순해서 사실 뭔가 더 거창한 이유를 가져다 붙이고 싶었지만, 이게 사실이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면 간혹 '인생 여행지 추천' 이라는 글을 보곤 하는데, 백이면 백, 댓글 중에는 무조건 '태국', 혹은 '방콕'이 포함되어 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얼마나 좋길래 사람들이 꼭 말을 하는 건지 궁금해하곤 했다.


해외 여행을 많이 다녀보지 않은 나로서는 필리핀(보홀, 세부), 중국, 일본, 스페인 정도가 전부였다. 아예 여행으로도 가 보지 않았던 방콕을 지원한 건 사실 어떻게 보면 무모한 선택이라고도 생각될 수 있었다. 하지만 '뭣하면 1년, 방콕에 워킹 홀리데이 간다 생각하지 뭐.' 라고 생각하며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방콕에서 한국인 팀원들을 만나 이것저것 대화를 나눠 봤는데, '방콕에 여행으로 와 본 적도 없으면서 취업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다'라는 대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누군가 보면 어이없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나름대로의 용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해 보지 못한 것들을 잔뜩 해 보고 싶었고, 얼마나 좋은 나라인지 경험해 보고 싶었고, 한국을 벗어나서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3. 그리고 지금


지금 나는 방콕에 온 지 벌써 한 달 차가 되었고, 많은 경험을 했으며, 그 때의 선택에 후회하느냐고 묻는다면 단언컨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지금부터 나의 방콕 생활기를 속속들이 공유할 예정이다.

한 번쯤 자신의 새로운 면모를 알고 싶다면, 나는 해외에서 살아 보는 것을 권해 주고 싶다. 가령, 나는 분명 더위에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 숨이 막힐 정도의 더위에도 질린다거나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뼈가 시리도록 추운 한국의 겨울이 더 힘들고 외로웠던 기억이 난다.


아예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들이 새롭고 낯선 곳에서 적응해 나가는 것이 조금은 어색하고 힘들었지만 나는 지금의 변한 내 모습이 더 마음에 든다. 따뜻하고 여유로운 방콕의 분위기가 나에게도 녹아든 건지, 예전에는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답답했던 내가 지금은 소파에 기대어 앉아 창밖만 바라보고 있어도 완연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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