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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lee Jun 02. 2024

[태국에서 살아남기]

당신의 불쌍한 삶에 심심한 애도를 보냅니다.

주말,  두 번째 브런치 기고글을 작성하러 외출을 했다.


 집에서는 금세 소파와 혼연 일체가 된다거나, 잠깐 알람을 확인한다는 이유로 다른 짓을 하기 일쑤이다. 집중을 하기 위해서는 외출이 필요했다. 그렇게 점찍어두었던 카페로 왔고, 사진에서 본 것과 같이 분위기도 좋고, 경관이 정말 멋졌다. 이 카페의 인기 메뉴 중 하나는 코코넛 라떼, 코코넛 케이크이다. 코코넛이 들어가 달달한 것이 특징인 이 메뉴를 시킬까, 고민하다가 '좀 전에 뭐 먹었으니까.' 라는 이유를 갖다 붙이며 이번에도 라떼를 시켰다.



아이스 라떼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굉장히 고소했으며, 라떼 애호가인 나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래, 항상 이런 식이었다. 내가 원하는 무언가가 있고, 나는 항상 이유를 가져다 붙이며 정당한 사유로 구매를 미루는 것이며, 줄곧 '다음에'라는 해답을 내리곤 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내가 기억하기로는 없었던 것 같다.



네이버 지도를 키면 서울에만 해도 별 표시가 다닥다닥, 족히 50개는 넘게 붙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만두라던지, 중식, 혹은 특별한 디저트를 파는 카페를 표시해 둔 것인데, 중요한 것은 저장만 해 두고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가끔 친구들과 서울에서 약속이 있을 때 우연히 근처라면 모두의 동의를 얻어 가 보는 정도로 해소하고 있었다. 아주 큰 맘을 먹고 찾아가지 않는 이상, 여전히 그 장소들은 '별'로써 지도 위에서 존재만 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방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다못해 마트에 장을 보러 가서도 하루에 정해 놓은 최대 금액을 벗어나게 된다면 '오늘은 어쩔 수 없지, 다음을 기약하자'라는 생각과 함께 내려놓게 되는 것이다. 몸에 배어버린 포기였다.


한때는 이렇게 살아가는 데 꽤나 자부심을 느끼고, 누군가가 '지독하다'라고 나를 표현하는 것에도 칭찬을 들은 것마냥 뿌듯하기까지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이를 어느 정도 먹은 사람이 되었고, 예전보다 나아진 형편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다.


그래서 최근 들어서는 이런 습관에 대해 생각해 왔고, 어떻게 사는 게 정답인지에 대해 늘 고민했다. 특히 방콕에 와서는 그 고민이 더 깊어진 것만 같았다. 물가가 한국에 비해 저렴하기 때문에 돈을 모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하루치 생활비를 낭비하지 않는다면 계획대로 돈을 제법 모아갈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돈을 모아서 뭐에 쓸까?


오늘 카페에서 읽은 책은 이 고민과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저자는 경험을 굉장히 중시하면서 돈을 소비하는 것을 너무 주저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돈을 소비함으로써 새로운 경험으로 연관될 수 있다면 그 편이 더 가치있는 일이라고 조언했다. 그와 함께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저축=가치있는 일' 이라는 공식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안전함을 위해서 돈을 더 모으려는 습성이 있는 현대인들에게, 돈으로 경험에 투자하라는 조언을 보면서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책에 나오는 '생활비 절약을 위해 조금 더 저렴한 식사를 하는 사람'이 딱 나의 표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에 세 끼를 사 먹으며, 하루에 사용 가능한 금액을 250바트 (대략 9,400원) 로 정해 두었다. 누군가에게는 조금 빠듯해 보일 수 있는 금액이나, 식사를 근처 마트 푸드 코트에서 해결하고, 커피를 세븐 일레븐에서 사 마신다면 딱 맞아 떨어지는 금액이었다.


이런 생활을 하며 나는 매일 저녁, 엑셀에 그 날 소비한 금액을 적었고, 예산안 안으로 떨어진다면 마치 미션이라도 통과한 것마냥 제법 기뻐했었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 다시 매대에 내려놓을 때, 한편으로는 이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나는 방콕에 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음에도, 유명한 음식점조차 가 보지 못하고 근처 푸드 코트에서 모든 끼니를 해결하며 행복해하는 소박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카페에서 이 책을 다 읽은 뒤, 저녁으로 가려고 했던 바 오픈 시간까지 조금 시간이 남아 근처에 있는 마트를 구경하기로 했다. 좋은 동네에 있는 마트다 보니 해외에서 들여오는 상품들도 다양해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해외 초콜릿 및 스낵류 코너를 구경하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분이었다.


여담이지만 나는 초콜릿을 무척 좋아하는데 - 어머니께서 당뇨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실 정도로 - 한국보다 태국에 직수입되는 초콜릿의 종류가 많아 구경이 굉장히 즐거웠다. 그와 함께 초콜릿을 보면서, 이건 이런 이유로, 저건 저런 이유로 사지 않아야겠다는 결론을 덧붙이는 내 자신이 다시 한 번 더 눈에 들어왔다.


나는 정말 좋아하는 것을 즐기지도 못하고, 원하는 것을 마음껏 취하지도 못하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렇다고 현재의 내가 경제적으로 쪼들린다거나, 무언가 큰 빚을 갚기 위해 아둥바둥 모아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다. 물론 돈을 모은다면 좋겠지만, 그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만 같았다.


왜 살아야 할까.

왜 돈을 모아야 할까.

절약하는 삶이 과연 옳은 것일까.


아직까지도, 그리고 어쩌면 평생을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살아가야 할수도 있다.


사실 내가 이렇게 된 데에는 어렸을 때부터 저축의 중요성을, 그리고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가치관을 교육시킨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추가적인 수익 창출을 위해 아둥바둥 노력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할까?', '나는 무엇을 위해 돈을 벌까?'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막연한 부자가 되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 부자의 정의를 내리지도 못했고,

부자가 된 다음의 삶을 상상하지도 못했다.


참으로 가난한 행동이지 않은가.

열심히 노력해도, 아무리 돈을 번다고 해도 나는 결과적으로는 내가 짜 놓은 틀 안에서밖에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었던 셈이다.


어쩌면, 이렇게 소비 형태에 대해서 방황하는 데에는 사실 미디어에서 아주 상반된 내용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구멍이 뚫리고 헤질 때까지도 입는 것을 자랑하고, 환경을 보호한다는 점에서 칭찬을 받는다.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책의 저자처럼 돈으로 경험을 산다고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한 아낌없는 소비를 자랑함으로서 선망의 대상이 되고 칭찬을 받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알고 망설임 없이 행동한다는 점에서 대중들이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나는 어떨까. 단편적으로 옷에 대해서 말을 해 보자면, 내가 좋아하는 건 파란색과 녹색이지만 내 거의 대부분의 옷은 검정색, 혹은 짙은 남색이다. 옷을 고르려다가도 가격을 보고 내려두기 일쑤이며, 결과적으로 골라드는 것은 아주 무난한 선택지일 뿐이다.


초콜릿을 좋아하지만 내가 마트에서 집어드는 것은 예산안 내의, 자주 먹는 초콜릿일 뿐이다.


만두를 좋아하지만 유명한 딤섬 집은 저장만 해 놓았을 뿐, 내가 자주 먹는 것은 냉동 만두, 혹은 집 근처의 만두 가게 정도였다.


이쯤 되니 나는 가성비로 이루어진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태까지의 인생이 대안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니 조금 슬퍼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했다고 해서 내가 하루아침에 돈을 펑펑 써대고, 조금의 죄책감을 가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아주 가끔씩만이라도,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소비를 해 보려고 한다.

조금씩이라도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되어 가고 싶다.



P.S


위와 같은 결심을 하고, 예정대로 혼술을 즐기러 바에 갔을 때, 시선을 끄는 메뉴가 있어서 시켜 보았다.

익숙하고 안전한 메뉴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고, 그 결과가 어떻든 낯섦을 받아들이는 것은 꽤나 멋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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