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15] 오 캡틴 마이 캡틴, 알 이즈 웰
2017.01.15.(일)
죽은 시인의 사회
사실 이영화도 자주 들어봤던 영화라서 봤는데 생각만큼 큰 감동은 없었다. 아마 내가 너무 어려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전반적으로 좀 지루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래도 몇몇 대사나 마지막 장면은 ‘멋있다’는 것 정도의 감상이려나.
이건 나중에 한번 더 봐야겠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으로선 큰 감동은 없는 작품, 제목이 멋있다.
-아 맞다.,‘ oh captain, my captain’ 오 캡틴 마이 캡틴
세 얼간이는 어떤 블로그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 인도판이 ‘세 얼간이’라길래 죽은 시인의 사회 본 김에 그 여운을 타고 본 영화다. 란초, 파르한, 라주 이 세명의 대학 이야기쯤으로 줄일 수 있겠는데, 성적 취업 성공 부를 추구하는 사회 속 ice대학에서 공학자를 목표로 공부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정말 공학을 사랑하고 ‘배움’이란 무엇인지, 호기심이란 무엇인지 알고 있는 란초가 파르한 라주 그 외의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사람들이 변해간다. 내가 영화로 본 란초는 정말 유머러스하고 재미있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행동을 하면 되는지 아는 옳은 사람이다. 물론 나중에는 란초도 무조건 정답만을 말하는 건 아님을 영화 속에서 보여주면서 완벽한 사람이 없다는 걸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데 그럼에도 이 이야기 속 주인공인 만큼 란초가 눈에 띄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영화는 인물 하나하나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일단 그전에 ALL IS WELL(알이즈 웰) 발음이 인도식 발음이라고 한다.
+영화 애니 리뷰 블로그를 해야겠어.. 노트에도 적고 블로그에 완성형을 올리는 거야.
죽은 시인의 사회의 인도판이 세 얼간이라는 말은 아마 닮은 부분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 텐데, 그때 영화를 고르던 중에는 정말 말 그대로 인도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를 재구성해서 '세 얼간이'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건 줄 알았다.. 그래서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고 난 뒤에 세 얼간이를 봤을 때의 그 충격이란...
죽은 시인의 사회는 곱씹을수록 좋은 영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담은 메시지나 감성이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데, 중학생인 그때는 지루하다는 인상이 강했다. 얼마나 지루했으면 '큰 감동은 없는 작품'이라고 했다.
중간에 조금 졸았던 기억도 난다. 감상문에도 적혀있듯이 중학생에게는 답한 영화였다. 하고 싶은 건 다하고, 뭔가를 하는 데에 있어서 아무런 장애물도 없는 삶을 살았었다. 말 그대로 세상이 내 거 같던 시기였다.(지금 생각하면 마냥 웃기지만) 세상의 중심이 있다면 내가 중심이겠거니, 하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살았다. 그만큼 자유롭고 억압이랑은 거리가 먼 시기였기 때문에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학생들에게 공감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공감하다 못해 내가 주인공인 것 마냥 엉엉 울어버릴 것 같다. 내가 제법 자랐음을 느낀다.
그에 비해 세 얼간이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처음 본 인도영화였는데, 인도영화는 다 그런가? 뜬금없는 음악, 그걸 즐기는 인물들, 이게 뭐하냐 싶지만 어깨를 들썩이게 되는 나... 쉴 틈 없이 즐거웠고 어이없었다. 세상의 규칙이라던가 논리랑 거리가 있는 또 다른 세계의 즐거움이 이 영화에 있었다.
지금까지도 내 친구들은 세 얼간이를 보지 않았다... 아.. 정말 감동과 충격의 연발인 대단한 영화였는데...
영화를 다 본 뒤에는 너무 충격받아서 마인드 맵을 그려가면서 여운을 즐겼다. 친구들에게 너무너무 이야기해주고 싶은 영화였는데, 세 얼간이 포스터를 본 친구들은 하나같이 "내 취향 아닌 듯." 하면서 거절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말하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
그리고 세 얼간이에서 말하는 알 이즈 웰(ALL IS WELL)
확실히 겹치는 메시지가 있는 것 같다.
사실 오늘을 즐겨라, 다 잘될 거야, 같은 말들에 어떤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바쁘고 다급하게 사는 나한테 그 말은 위로나, 응원보다는 어깨에 힘이 빠지는 말이라고 할까. 그런 말보다는 구체적인 평가에서 오는 긍정적 피드백에 안심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편이다.(T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말이다.
저런 말들의 소중함을 느낀 계기를 떠올리자면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무튼 그즈음에 한 친구와 하교를 하게 됐었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2학년이 되어서 반이 달라졌지만 늘 인사하고 다니는 귀여운 친구였다. 종종 나한테 고민을 털어놓은 친구였는데, 그날은 드물게도 내가 불만들을 털어놨었다. 무슨 일이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내가 좀 화났던 걸로 기억한다. 내 이야기를 쭉 듣던 그 친구는 괜찮아.라고 했다. 그 친구는 늘 괜찮아~,괜찮아! 괜찮아.., 늘 괜찮다고 하던 친구였다. 나한테까지 괜찮다고 하는 말에 기분이 상했었다. '너는 늘 뭐가 괜찮다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괜찮다고 좀 하지 마! 하나도 안 괜찮아!" 하고 화를 내버렸다. 친구는 미안하다고 했고 분위기가 뻘쭘해졌던 기억이 난다. 그 일이 있고 한참 뒤에야 깨달은 거지만, 그 친구의 '괜찮아'는 일종의 기도 같은, 바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진짜 괜찮아서 괜찮다는 게 아니라, '괜찮아질 거야'하는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에게 괜찮아졌으면 좋겠다. 괜찮아지길 바라. 하는 따뜻한 마음이 담긴 말이 아니었을까. 그때 화내버린 내가 창피하다. 그리고 오히려 내가 미안하고, 고맙다.
졸업하고 나서부터는 그런 다정한 괜찮아. 오늘을 즐기자. 다 잘될 거야. 같은 말들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앞으로도 많을 것 같다. 그럴 때마다 그 친구가 생각난다. 늘 다정해서 고마웠던 친구다.
중학생 때 쓴 영화감상문을 옮겨쓰자니 그 친구 생각이 나다니,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랄지,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