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날

[2022.02.28]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운

by 해구


내가 윤동주를 좋아하는 건 그의 무력함에 공감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 사는 게, 이렇게 어려울지 몰랐는데. 그렇게 됐네요. 선생님이 없는 저에게는 역시 선생님들이 필요한가 봐요.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선생님이 있다면, 물어보고 싶어요.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요?

모든 죽어가는 것은 어떻게 사랑하는 건가요?

나에게 주어진 길을 무엇인가요?

걷는 법도 잊어버린 밤입니다.


아 괴롭다!











평소처럼 정해진 시간에 학원으로 출근했다. 내가 맡은 학년은 고1이다. 이전까지 전쟁터 같던 고3 입시반을 맡았던 나인지라, 고1반은 너무 평화롭기만 했다. 어느 정도 지루한 이 교실에서 나는 아주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이 귀여운 고1들이 학원의 어떤 무리보다 그림에 진심이라는 점이다. 입시미술학원에서 가장 자유로울 법도 한데 말이다. 그림이 어렵다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학생부터 도움 한번 요청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타입까지 다양한 학생들이 있지만 모두 그림을 좋아하고, 학원을 이제 막 다니기 시작한 학생이 대부분이라, 저마다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명 한 명이 소중하다. 전쟁터의 분위기도 싫지 않았는데, 고1의 반짝반짝함은 나를 기분 좋게 만든다.


오늘은 출근해보니, 처음 보는 얼굴의 학생이 있었다. 아마도 새로운 학생 같았다. 다가가 보니, 아이유의 화보를 소묘하고 있었다. 열심히 관찰하는 눈동자를 보고 싶었지만 모자를 깊게 눌러써서 볼 수 없었다. 수업이 끝나기 전에는 그 눈을 꼭 봐야지 생각하면서 학생들을 둘러봤다. 교실을 네 바퀴쯤 돌았을까, 그 학생의 옆에 앉으면서 말했다.”선생님이 조금 만져도 될까?”학생들은 대체로 선생님의 도움을 달가워하지만, 간혹 자신의 그림에 애정이 큰 학생들은 선생님의 도움을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늘 조심스럽게 질문하고 들어간다. 아직도 눈을 보여주지 않는 학생의 작은 끄덕임을 보고서 연필을 건네받았다. 두 손으로 공손히 연필을 건네는 모습이 귀여웠다. 연필을 세우고 삐뚜름한 아이유 씨의 입꼬리와, 눈매를 다듬었다.

사각이며 연필이 종이를 스치는 사이에 넌지시 말을 걸었다.

“친구는 학교가 어디야?”

여러 학교의 학생들이 섞여있는 학원에서 학교를 묻는 건 나의 습관이다. 학생이 대답하기도 쉽고, 어디 사는 지도 대충 알 수 있다. 그리고 멀면 멀어서 안 힘들어?, 가까우면 엄청 가깝네! 하면서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에 단골 소재다. 보통은 자연스럽게 OO학교요. 하고 대답하는데, 학생이 모자를 들어 올리고 눈을 댕그랗게 뜨고서 나를 쳐다봤다. 드디어 눈을 보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기묘한 대화의 공백에 당황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생각하는 중에 학생은 다급하게 말을 뱉어냈다.

“OO외고요!”

나는 “외고면 멀겠다. 통학은 안 힘들어?”

이렇게 딱 한 문장 말했다. 그 뒤에는 학생이 말 그대로 둑이 터지듯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쏟아냈다. 재잘거리기 좋아하는 소녀의 인상과는 달랐다. 그 다급한 목소리는, 마치 너무 힘들어서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학생은 외고를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 그림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외고에서 미술 입시를 준비하는 건 여러모로 힘든 일이라서, 일반고로 전학을 오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반대했다. 그런 상황에 학원을 일주일에 하루밖에 나오지 못하는 것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버지는 무직으로 경제력이 없고, 어머니 아버지의 횡포를 두려워하면서도 아이를 지켜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아빠가 무서워요.”라고 말하는 학생의 눈에서는 반짝거리는 것이 다른 나쁜 것으로 흐려져있었다. 처음 본 나에게 쏟아내는 말들을 들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얼마나 걱정이 되면 나한테 말을 할까. 학생의 표정과 말투에 묘한 걱정이 밀려왔다.


슬프게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세상에 슬픈 아이들이 많다는 걸 까먹고 있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나는 그 상황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조곤조곤 이야기해주었다. 나도 그랬어.하는 위로와 응원, 그리고 생각보다 세상은 어떻게든 된다는 막연한 말들을 했다. 말하면서도 이게 도움이 되나, 싶어서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어설픈 내가 슬펐다. 그에 비해 매끈하게 다듬어진 아이유의 입매와 눈매를 확인하고, 도망치듯 학생에게 연필을 넘겨줬다.


넘겨준 것이 연필인지, 아이의 고통인지 모르겠다. 나마저도 이 아이의 힘듦을 외면하는 것 같아서 괴로웠다. 그렇게 무력하게 힘들었던 더 어린날의 나는 집 앞에서 울면서 다짐했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게 살 거라고, 이렇게 슬퍼도 부끄럽지 않게 살 거라고..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어려운 일이군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별도 안보였다. 나는 지겨운 무력함에 젖어서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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